눈을 밟고 가자
흙 묻은 발로 꾹꾹 눌러 밟고 가자
선혈이 낭자한 눈을 으깨어 짓밟고
산 넘어 동굴까지 밟고 가자
어제의 눈이 오늘의
하얀 눈이 아니듯이
누가 나의 눈을 밟아다오
즈믄 날들을 빛 바랜 백색 공허는
한천(寒天)의 별빛 냉기로 이마가 시려
투명한 가슴 열어 뵈는 얼음 하늘
하얀 나의 눈을 밟아다오
오늘의 내가
까만 내일의 나를 모르듯이
눈을 밟아보자
텅 빈 들녘, 하얀 눈을 다시 보면서
뽀드득 뽀드득
지옥문 번쩍 열릴 큰 소리로
지금까지, 밤에도 하이얀
눈을 밟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