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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열 시인의 작품읽기

김성열 시인
부 자
작성자: 김성열 조회: 1207 등록일: 2013-03-23

부 자 / 김성열

부자간은 닮기 마련이며 많이 닮을수록 그 정이 두터워 보인다. 

  지난여름 덕수궁에서 어느 외국인 부자를 보았다. 검은색의 얼굴에 터번을 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림자처럼 꼬마는 따라다녔다. 이들 낯선 부자는 곳곳에 많은 점이 닮아 있었다. 쑥 들어간 눈언저리에 잔잔한 경련을 뚫고 비치는 눈빛이며, 두툼한 입술, 눈, 코, 확 다가드는 전체의 인상이 하나같이 닮아서, 외국인도 부자간에는 저토록 닮는구나 싶었다. 호기심에 끌려 한동안 그들을 뒤따라 다니며 그 모습을 관찰하여 보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길 나누며 다정하게 걷던 이방인 부자의 은밀한 정분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첫아들을 낳아 놓고 마음이 설레었다. 아들을 가졌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며, 막연한 기대감에 안절부절못하였다.  

  그 이후, 아이는 자라고, 시간은 흐르고, 그리고 나는 부자간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언젠가 목욕탕에서의 일이다. 이제는 내 겨드랑이에 쑥 올라올 만큼 껄렁하게 자라버린 아들의 등을 밀어주다 말고, 거울에 비친 아이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수척한 모습과 튀어나온 등뼈, 굽으러진 등의 형태가 그렇게도 나를 닮을 수 있을까. 샅 아래 딸랑 매달린 남자를 관찰하며, 아이의 몸 구석구석에 나를 포개어 보면서 흐뭇한 마음에 젖었다. 남들이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남들이야 순간적으로 외모만 보지만 속마음이야 나같이 절실할 수 있을까. 발가락의 열지은 형태라든지 손가락의 특징 하나하나가 축소판인 듯 새삼스럽다. 이러다간 내 운명까지 닮을까 걱정이다. 


 

  부자간의 닮음 현상은 인생을 사색하는데 많은 문제를 보태어 준다. 아버지는 자기를 닮은 아들의 구석구석을 은밀하게 확인하면서 아버지 됨을 믿는다. 다정했던 우정도 때로는 깨어질 수 있고, 몸을 섞어 함께 살던 부부간도 헤어지면 남이다. 그러나 부자간은 평생을 두고 한 마음으로 믿고 산다. 

  믿음이란 일체감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곳곳에 자기를 포개어 일치시킴으로서 아들을 자기화 한다. 그러면서 마음까지 하나로 포개어진다는 묘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어머니는 진통을 기억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닮은 점을 간직하며 영원한 아들을 마음속에 잉태시킨다. 이러한 부자간의 관계는 묵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실이지만 너무도 은밀한 관계여서 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간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상을 보며 아버지는 아들의 음성에서 과거를 들으며 서로를 재발견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잃었던 자기를 다시 찾는 기분이어서 언제라도 새삼스럽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두 가지 방법으로 볼 수 있거니와, 하나는 직접 거울에 비쳐보는 것이고, 하나는 부자간에 서로를 통하여 보는 것이다. 


 

  아버지는 딸보다 아들에게서 더 절실한 자신을 느낀다.  딸보다 아들에게서 더 절실한 자신을 느낀다. 집에 딸아이가 아빠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는 깜찍스럽고 귀엽지만 「아부지」하고 무뚝뚝하게 부르는 아들의 음성은 더욱 믿음직스럽다. 그 "아부지" 소리에서 나는 천하를 다 준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을 간직한다. 

  선친께서 들은 고사 한 토막―. 두 부자가 돌담을 쌓던 중 담이 무너져 지나던 어린애가 깔려서 죽었다. 두 부자는 아기의 시체를 쌓던 돌담 안에 넣고 감쪽같이 담을 쌓아올렸다. 이 때 아들이 아버지께 한 말이 엄숙하다. 

  「아부지, 이 일을 어머니께 말하지 말아요」 얼마나 냉엄한 밀약인가. 나는 이 보다 더한 얘기를 아들과 나누고 싶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아버지 편에서 아들을 보면 삶의 과정을 추억하게 하지만, 아들 편에서 보면 고정된 상을 놓고 숙제로 풀어 나간다. 과정은 결과에 엉킨 절절한 사연을 잘 말해 주지만 형상만으로는 그 내력을 잘 모른다. 아들은 아버지만큼 인생과 세월을 익히지 않고는 그 마음을 깨칠 수 없다. 90의 아버지에게는 60의 아들이 어린애로 보이며, 60의 아들은 어린애가 아니라고 납득시키지 못한다. 


 

  부자간은 영원한 등산관계에 있다. 

  인생길을 가면서 쉬임없이 산을 오르고 내린다. 아버지와의 일정한 거리는 한 평생 유지되며, 산 넘어 사이 있듯이 아들이 정상에 오르면 아버지는 더 높은 산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일생에 단 한번 아버지와 만난다. 임종의 순간이다. 허지만 그 때는 공허한 허상에 접하여 정신적인 대화만 있을 뿐 실체와 만날 수 없다. 평생을 뒤쫓아 와서는 모처럼 단한번의 상봉에서 인생의 허무만 느낄 뿐이고 거기서 또한 자기 아들과의 사별을 기약한다. 아들을 붙잡고 남기는 유언은 얼마나 사무친 대화이냐. 아버지의 임종을 우는 아들은 그 보다 몇 갑절 더 처절한 자기 아들과의 임종이 남아 있음을 모른다. 임종이야말로 아버지 됨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순간이며, 아버지를 종합하는 대단원이다. 이는 죽어보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아버지로서의 가장 높은 경지겠다. 다하지 못한 말씀, 깨우쳐 주지 못한 인생의 의미, 비통한 절규, 그러나 내 어찌 그 참뜻을 깨달을 수 있을까. 선친께서는 내 이름을 세 번 부르면서 가셨다. 채 맺지 못한 마지막 음성을 삼키며 운명하신 선친의 영상과 유언은 내가 아들 됨을 가르쳐 주었고, 또 내가 아버지 되었을 때의 어려움에 대한 암시적인 게시였다. 진정 이러함에 아버지의 눈에 천사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나, 아들인 나는 천사가 되지 못한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유언을 통해 아들을 증언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간직하여 새김으로서 사무치게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이 같은 부자간의 은밀한 관계는 때와 장소가 바뀌어도 변함없을 터인즉, 터번을 쓴 그 외국인 부자가 나누던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의 내용이 자꾸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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