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 /김성열
시인은 심안(心眼)으로 사물을 보면서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없는 사물과 존재의 배후까지꿰뚫어 본다. 시인의 심안은 어떤 구조와 작용을 통하여 존재의 배후와 사람의 마음속까지 보는 눈을 갖는다는 것일까. 육안으로 보이는 감각적 사물을 심안으로 재구성하여
보여 지는 것으로 표현하는 일이 시인의 사명이다.
보는 사물이 보여 지는 결과물로 표출될 때 심안의 가치가 높아진다. 외부의 잡다한 자극에 대한 내면적인 질서체계를 이루는 것이 심안의 시력이다. 시인의 심리적 상황과 지식 수준에 따라 심안의 시력은 차별화 될 수 있고, 시적 언어로 구현 될 때 작품의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유독 시인만이 심안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창작과정에서 필요한 조건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육안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심안의 시선으로 육안의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의 창조는 심안적 시선이 육안으로 도치(倒置)된 것이다. X-Ray로 뼈 사진을 찍고, 초음파로 내장의 운동을 관찰하듯 시인의 심안은 독특하고 이색적인 기능을 가진 내면의 눈이다. 상식, 전통, 문화, 규범에서 일탈될 때 초음파적인 시적 효과를 이룰 수 있다. 일반 사진기로 촬영한 것처럼 사물을 표현할 때 시적인 경계심이 필요하다. 소재의 희소성(稀少性)이나 대상의 표현욕구, 초현실적 이미지 창조 등의 시적 동기가 강렬하게 작용하지 못하면 시적 긴장과 참신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문예사조 3월호의 게재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육안과 심안의 시력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시들이 육안과 심안의 시선이 질서 없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시작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시인의 의식과 창작 동기를 의심하게 된다. 보는 것에 대한 집중력이나 보여 지는 것에 대한 갈등과 긴장이 결여된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은 시인의 시정신이나 의식과 관련된다. 어느 일면을 강조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양 시선이 혼재되어 어느 특징적인 개성이 없으므로 의식의 모호성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보는 것에 대한 즉물성(卽物性)이나 보여 지는 것에 대한 갈등과 긴장의 요소가 유별나게 보여지지 않을 때 비개성적, 상식성, 진부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늘 아래 / 설화(雪花) 너로 가득 / 와! / 벽 터지는 소리 / 찌든 가슴들 희열에 / 떨어
// 반나절 삶 / 햇빛을 끌어안고 / 흙 속으로 / 미련 없이 잦아드는 / 너의 모습 눈부시어
//바라만 보고 서 있는 / 나도 / 흘러내리고 내려 / 흔적 없이 / 너를 따라가고 싶어
/ 가고 싶어
오희창 시 “흐르는 눈꽃” 전문 -문예사조 3월호
이 시는 육안으로는 해석되지 않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늘 아래 설화는 시인의 심안에
의해 질서 지워진 “너”이며 “벽”이며 “희열”이다. 심안의 시력으로 수동화 된 눈꽃은 너라는 호칭으로 의인화 되어 찌든 가슴이 희열에 떨고 미련 없이 잦아드는 눈부심이 된다. 나도 함께 흘러내려 너(자연)를 따라 가고 싶다는 것이다. 눈꽃과 화자(話者), 자연과 인간이 동화(同化)된 시적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시인이 세계를 자아화(自我化 ) 할 때 동화와 투사(投射)의 기법을 활용하게 되는데 오희창의 시는 양면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감정이입에 의한 투사기법과 세계를 내면화하는 동화의 기법이 잘 융합되어 있다.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불교의 윤회생사(輪廻生死)의 사상적 기틀이 잘 조화된 시적 공간을 그려 줌으로서 다의적(多義的)인 의미층(意味層)을 갖는다. 이러한 시적 조형성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임으로 이 시인의 심안의 시력이 노화되지 않고 젊게 빛나고 있음을 확인 시켜주고 있다.
해변에 가면 / 큰 눈이 있다 // 하늘과 바다가 만나 / 긴 일자(一字)를 그린다. // 잠을
깨면 / 하늘을 들어 올리며 / 눈을 뜬다 // 젊은 연인들의 춤사위를 지켜본다 /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한 비명 / 지긋이 웃는다 / 삶에 찌든 영혼의 먹먹함을 바라본다 / 좌절한
이의 서러운 이야기도 듣는다 / 긴 한숨이 뿌연 안개로 답한다 // 기쁨과 슬픔, 고독을
모두 안고 / 저무는 저녁, / 노을 / 눈시울이 붉다 // 억겁의 눈물 모아, 부딪치며 위로
한다 / 철썩철썩 소리로 / 잔잔히 다가온다 // 모든 이의 가슴을 태운다
이희국 시 “해변에 가면” 전문 -문예연에서 사조 3월호
시인의 심안이 날카롭게 번뜩이는 시다. 해변에서 화자의 눈앞에 보이는 바다는 없고
심중(心中 )의 바다가 논리적 질서를 잃고 움직이는 과녁처럼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변형된 바다가 그려지고 있다. 논리적 질서를 무시한 의식의 흐름이나 정서적 기복을 시로 형상화한 안목이 눈길을 끈다.
해변에 가면 / 큰 눈이 있다(1연)라는 표현에서 해변과 큰 눈의 이미지는 해석과 감상의 영역이 매우 넓고 크다.
바다를 “큰 눈”으로 바꿔 읽을 수도 있고, 내려누르는 수평선 너머의
하늘을 “큰 눈”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며, 바다와 맞닿은 하늘을 “큰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넓고 넓은 바다를 보고 있는 화자의 눈이 크게 뜨여 있다고 의역할 수 있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 / 긴 일자를 그린다(2연)는 1연과 무관한 돌발적인 이미지이다.
잠을 깨면 / 하늘을 들어 올리며 / 눈을 뜬다(3연) 이 역시 1.2연과 관련 없는 진술이다
이러한 이미지와 시적 전개가 초현실적이다. 돌발적인 이미지들이 제각각의 특성을
갖고 마찰과 충돌, 갈등과 조정 등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의미를 생성케 하는 초현실적
기법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이희국이 심안으로 보여준 바다는 현실적인 것도, 실제적인 것도 아닌 상상 속의 바다인 것이다.
이러한 상상 속의 바다는 독자의 자의적인 해석과 연상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4∼7연에서 이미지의 갈등과 충돌의 정서적 격랑이 이완된 채로 느슨한 표현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시 전체의 각 연들은
배타적으로 제 몫을 갖고 초현실적 바다에 집결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꽃나무 아래 있느냐 / 멀어져 간 너는 // 어느 영혼의 풀밭에 / 젖은 눈으로 앉아 있느냐 / 멀어져 간 너는 //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건 / 여린 꽃잎 몇 장과 / 기억의 목록을 편집하는 일 / 꽃나무 아래 한 사람 / 정갈하게 추억하는 일 // 어느 꽃나무 아래 있느냐 / 멀어져 간 너는
강외숙 시 “꽃나무 아래 한 사람” 전문 -문예사조 3월호
강외숙의 시 “꽃나무 아래 한 사람”은 낭만적 서정이 감미롭게 드번지는 작품으로 읽힌다.
고답적(高踏的)이면서 의연한 기품(氣品)을 지닌 화자의 넉넉함이 여유롭고 귀티가 풍긴다.
이 시에서 주목할 점은 내적 시선이다. 외부 자극을 심안으로 빗보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시선이 자신의 내면을 주시하는 형국이다. 주관적 대상을 객관적 관점으로 표현하는
주관의 객관화라 할 수 있다.
어느 꽃나무 아래 멀어져 간 너(1연)와 영혼의 풀밭에 젖은 눈으로 앉아 있는 너(2연)는
익명의 다수일 수도 있고, 심중에 존재하는 다른 모습의 화자 자신일 수도 있으며, 꽃으로 그려지는 아릿따운 이상형의 인간상일 수도 있다. 이렇게 읽혀지는 것은 화자의 내면에 주관적으로 존재한 “너”를 꽃나무 아래 멀어져 간 너, 영혼의 풀밭과 젖은 눈으로 앉아 있는 너, 라는 객관적 묘사를 통하여 감각적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외숙의 시들을
주의 깊게 읽어오면서 시적 의식이 뚜렷한 시인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의식이 없는 시인이
존재할 리가 없겠지만 문맥화 되어 발표된 시에서 알맹이도 갈등도 없는 내용을 접할 때
강외숙의 시는 안정된 위안을 준다. 여유로움과 충만한 자신감으로 의식화 된 이 시인은
더 좋은 시로 독자들에게 보답해 주리라 믿는다.
3월호 특집으로 꾸민 사단법인 한내문학편의 시를 읽고 나서 문학의 저변확대라는 이상적
슬로건이 분명하게 가시화 된 현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내문학은 25년의 연륜을 갖고 2009.3월 사단법인으로 등기된 보령시에 본부를 둔 우수한
문학 단체이다. 문학 강좌, 노인문학 교실, 백일장, 한내문학상, 시화전, 도서기증, 시낭송회,
한내문학 발간 등자유분방한 문학 활동을 통하여 그들의 문학 혼을 불태우고 있는 모범적인
문학단체이다.
가녀린 몸 / 바람에 휘청대나 / 깊숙이 자리잡으며 // 꺾이지 않으려는 몸짓 / 지조없다 하지만 / 외유내강 정신으로
// 허허벌판에 / 무리지어 의지하며 / 만삭된 속대 피어오르면
//구름같은 꽃 여울로 / 세상을 흔들어 보며 / 풍류도 즐기는 멋쟁이구나
홍성수 시 “갈대” 전문 -문예사조 3월호
갈대를 소재로 한 시나 회화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홍성수의 갈대에서 참신한 시각(視覺)을
보게 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든지 갈대와 같은 여심이니 하는 언술들은 사람의 마음이 변화무쌍하면서 때로는 지조 없는 여자의 마음을 은유하는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홍성수의 갈대는 구름 같은 꽃, 여울로 세상을 흔들어보며 풍류를 즐기는 멋쟁이로 묘사되고 있다. 가녀린 몸이 바람에 휘청대지만 꺾이지 않으려는 외유내강의 강직하면서도 능동적인 정신의 표상으로 형상화 되고 있으며, 허허벌판에 무리지어 의지하며 만삭된 속대로 피어오르는 이색적인 갈대의 형상을 개성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개성이 독창성(獨創性)과 참신성을 담보해 준다고 하겠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 스스로 부르기 시작한 자신만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 타고난 선비정신으로 / 옷깃 여미며 외치던 새로운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 푸른 강물을 건너고 빛나는
초원을 달리면서 하늘로 고함치는 소리랍니다 // 살아 움직이는 듯한 / 섬광도 같은 그 소리 / 우주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 엄청난 우렛소리를 담았습니다.
최양희 시 “문학 이야기” 전문 -문예사조 3월호
시인의 내면에 추상적으로 것도는 문학 이야기를 시의 형식으로 양식화 하고 있다. 관념적으로 무한히 확산될 수 있는 문학의 개념과 얽힌 사연들을 시라는 틀로 명료하게 정리한 집중력과 형상성이 지나치리만큼 순박하여 한 점 티라도 묻었으면 싶다.
천진난만한 진솔성이 애늙은이의 언행처럼 무념무상으로 체득(體得)된다. 최양희 시의 특징은 양식화 된 상상력의 시적 형상화라
할 수 있다. 산만한 내면의식을 시의 틀 속에 잘 담아낸다는 의미다.
자신만의 노래(1연), 옷깃 여미며 외치던(2연), 강물을 건너고 초원을 달리면서 고함치는 소리(3연), 섬광과도 같은 소리(4연) 등의 표현은 개성적으로 재단되어 시의 문맥으로 양식화(형식화)된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인생은 모래시계처럼 끊임없이 빠져든다 / 그리고 내 내면에 꾀병처럼 따라 다니는 그리움 / 그 그리움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 정녕 이것이 삶의 한 부분이라면 /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 가을인 듯, 겨울인 듯, /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작별을 고해도 달빛은 쓰다 달다 말이 없다.
배윤희 시 “소소한 일상” 잔문 -문예사조 3월호
사소한 일상의 소회를 담담한 필치로 잘 그려낸 서정적 그림을 본다. 시의 행간을 이어가는 어조(문맥)에서 안정감이 배어 흐르고 소록소록 정감이 솟는다. 시인은 소소한 일상이라고
명명했지만 핵심 주제는 가볍지가 않다. 꾀병처럼 따라다니는 그리움은 일상의 소소함으로 가볍게 넘기기에는 그 뿌리가 깊고, 질긴 운명처럼 뿌리칠 수 없는 절대고독의 그림자가 아닌가. 찻잔 속의 폭풍처럼 소소함의 너울이 꾀병 같은 그리움의 방파제를 무너뜨릴 듯이 쓰나미로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일상성이 현대인의 본질이라고 설파한 미국의 어느 여류 작가의 말을 상기시키는 암시적 효과도 거두고 있다. 과소평가할 수 없는 시적 무게와 내공을 보여주고 있다.
문예사조 3월호의 게재시를 통독한 후에 오는 느낌은 시인들의 긴장감이다. 각자가 자신의
문학적 내공을 다져나가는 긴장된 시작태도를 감지한 점이다. 서정시는 “엿들어진 독백”이라는 말처럼 누군가는 자신의 시를 보면서 엿듣고 있다는 은밀한 사실을 더 많이 의식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