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밀착된 언어
시적으로 표현된 언어가 사물이나 삶의 현실에서 멀어졌을 때 추상화를 감상할 때처럼
막연한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시적 언어가 우리의 삶에 밀착되지 않고 허허롭게 추상화 된다면 자칫 헛소리가 되기 쉽다. 우리의 삶은 일상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현실 공간에서 이어지면서 또 부단히 과거로 지워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은 희로애락을 수반하면서 우리의 정서를 울리고 웃기고 하면서 때로는 지루하게 느끼기도 하며 무심하게 지나치기도 한다. 그러한 삶을 시인의 혜안으로 밝혀주고 해석해내야 하는 것이다. 삶의 내용을 음미하고 관조하되 시적인 표현에서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한다. 직접 관련이 없는 추상화된 주관이라든지 특수한 체험이라고 해서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내미는 단편적 에피소드 같은 진술이나 표현은 삶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삶을 개성적으로 제시하되 허황되지 않도록 직시할 때 삶과 밀착된 시적언어가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윤열자의 시가 괸심 깊게 읽힌다.
반 년 만에 만난 막내 부부와 / 기쁨으로 만난 주말 /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 플로리다
해변으로 떠나는데 / 운전대를 잡은 딸과 / 옆자리에 앉은 아들은 / 그동안 못나눈
이야기로 / 6시간 내내 무슨 할 말이 / 그리도 많은지 웃음 범벅으로 / 행복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아리조나주 중간 지점에 / 와플 하우스에 들려 / 푸짐한 점심을 먹고
어둑어둑해질 쯤 / 목적지 ‘데스텐 비치’에 / 여정을 풀고 못다한 사랑의 대화로 / 모정
어린 애정을 나누는데 -윤열자 “플로리다 여행” 전문 문예사조 7월호
이 시를 주목한 바는 시의 언어 표현이 삶의 현실에 구체적으로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꾸밈도 과장도 없이 일상적인 대화처럼 진술해 가면서 아주 구체적이어서 진정성이 드러나고 상이 선명하다는 점이다.
반 년 만에 만난 막내 부부와 기쁨으로 만난 주말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운전대를 잡은 딸과... 이렇게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못다 한 사랑의 대화로
모정어린 애정을 나눈다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길에서 시인의 마음은 설명되지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하도록 진술된 어조가 담백하다. 읽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도록 정서적 환기 작용을 유도하기에 충분하다.
윤열자의 다른 시에서도 위와 같은 맥락으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오층 건물에서 본 / 끝도 없는 바다에는 / 오늘따라 /. 너는 왜 큰 고집을 피우는가......
바닷가를 걷는 우리에게 천둥의 울음도 저리가라며...
-윤열자 “파도여” 일부 문예사조 7월호
이 시인은 재미교포 문인으로 문예사조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자주 글을 보내오는데
그때마다 좋은 시를 읽을 수 있게 해주어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초여름 활활 타는 송전 저수지 / 한 줄기 소낙비 스친 이후 / 침묵만이 수면 위에 /
얹혀 있다 // 팽팽한 기다림 한계점에 올 때 / 입질 한 방에 온 몸에 전율이 / 너는 아직
날 버리지 않았어 // 모래톱 언저리 / 한껏 몸을 지탱한 덩그런 빈 의자 / 누구를 위한
빈자리인가 // 외가리 한 마리 곁을 살피나 / 미동도 아랑곳도 / 비스듬한 회전의자에 /
삶의 무게 덕지덕지 매달려 있다 // 황량한 이곳이 누군가 / 여름밤을 보내면서 / 호숫가
내려앉은 별들을 / 망태에 주워 담으며 / 어부 사시를 읊은 / 멋진 이의 자리가
되었으면 -한상기 “낙시터 빈 의자” 전문 문예사조 7월호
이 시 역시 삶의 한 순간을 잘 처리하고 있다. 소낙비 스친 후에 낙싯대를 드리운 화자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지면서 자신의 삶의 무계를 지긋이 견디고 있는 내면의식도 실려 있다.
비스듬한 회전의자에 삶의 무게 덕지덕지 매달려 있다(4연 2,3행)와 호숫가 내려앉은
별들을 망태에 주워 담으며(5연 3,4행) 같은 표현에서 삶에 대한 시인의 정서가 어떤 것인가를 잘 그려주는
명구로서 시 전체를 탄탄하게 살려주고 있다.
이 시에서 주목할 바는 삶에 대한 통찰의 시선이다. 호숫가에 낙싯대를 드리우고 앉아서
삶의 무계와 갖가지 유혹에 빠지고 헤어나고 하는 인간사를 깊이 사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색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회전의자에 덕지덕지 매달려 있는 먼지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삶의 순간적인 단면에서 의미를 추출해 내는 시인의 시선을 통하여 읽는 사람은 또
다른 정서로 수용, 침투될 것이다. 함께 실린 이 시인의 시 “운길산에 걸린 해” “길” 역시
위와 같은 맥락에서 공감을 주고 있다.
집 마당을 나와 여남은 발자국 걸어 논둑에서 오른쪽 어깨를 틀어서면 겹겹 소백산이
병풍처럼 보이고 열 걸음 앞 남한강 지류 시냇물 속엔 쉬리, 송사리, 피라미가 노닐던 곳,
뒷산 높은 처마는 오후 세 시경 여름날도 그늘이 드리워져 앞마당 응달이 유난히 길던 곳, 서리
맞은 호박 담장 위 빨간 고추잠자리 맴을 돌다 머리 위에 날아 내리던 그곳,
겨울 동그란 문고리를 잡으면 손가락이 쩍 달라붙고 석탄을 나르는 산 너머 기적이
베갯잇에 머물면 새벽잠을 깨 시를 쓰다 장닭이 홰를 칠 때 화롯불에 손 녹여 십리
통학길을 자전거로 등교하던 그곳, 동지섣달 방패연을 날리고 눈 오는 날 토끼 발자국을 따라 토끼몰이를 하면
예쁜 산토끼가 깡충 눈발에 노닐던 그 그곳, 아주 오래전 비마사 올라가던 빗겨진 언덕.
-김대연 “母鄕” 전문 문예사조 7월호
이 산문시는 길이에 비해 울려오는 느낌은 짧고 담담하다. 담담하다는 느낌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일까. 오래 된 흑백 사진첩을 넘길 때, 친구 집에 걸린 먼지 낀 옛날 사진 액자를 보았을 때, 이삿짐을 챙기면서 버릴까 말까 망설이어지는 소품을 대할 때처럼 담담하다. 이러한 담담함을 시에서 느낄 때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고 할까 그렇지 않다고 할까.
이 시에는 갈등도, 치열성도, 애절한 절규도 나타나지 않고 점잖은 어조로 내면적인 풍경화를 그려놓았지만 허전하기 그지없다. 서두에서 말 했듯이 언어 표현이 현실이나 사물에
밀착되지 않으면 언어가 생기를 잃고 둥둥 떠서 빈 소리가 된다는 의미를 일깨워 주는 예로
드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라고 웃어넘길 수 있을까. 현실과 시적 대상이 삶에 밀착된 언어로 구현 될 때 더 넓은 공감영역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조에 대한 인식의 전환
문예사조 7월호에 실린 황인두의 시조 5편을 반갑게 읽었다. 시조는 고려 말에서
조선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질긴 역사를 가진 우리의 고유한 정형시다. 자유시에
비해 상대적인 열세로 뒷전에 밀려나긴 했으나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담아낸 시 형식으로
고이 가꾸고 길이 이어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현 시조문단에서는 치열한 논쟁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시조가 고루한 고전의 선의감을 탈피하지 못하고 시조를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자유시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고 있음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차적으로 시조를 쓰는 시인의 몫이 크다 할 것이다. 3장 6구, 3,4,3,4,(초,중장). 3,5,4,3(종장) 이라는 형식에 지나치게 구애받는 일이라든지 음풍농월, 화조풍월이라는 옛 시조의 강한 인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파격이라든지 변화와 실험정신이 미약한
시인의 태도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시조에 대한 인식의 대 전환이 있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산 속에 내장처럼 볼거리 주렁주렁
가을이 찾아오면 산꾼들 들썩들썩
호남의 금강산이라 이구동성 입 여네.
내장산 단풍들이 서서히 빛 바래듯
바위도 긴긴 세월 한 줌의 흙이 되듯
젊은 날 삶의 고단함 세월 속에 묻히리.
늘씬한 우화정(羽化亭)은 바람이 낮잠 자면
연못에 반영되어 일란성 쌍둥이네
어쩌면 눈가에 주름 하나까지 같을까.
- 황인두 “가을의 전령사 내장산”전문 문예사조 7월호
황인두는 시조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많은 시조를 쓰고 활발하게 발표한 시인이다. 지난
5월호에 “정선 아리랑 가리왕산”외 9편을 발표한 바 있고, 7월호에 “가을의 전령사
내장산”외 4편을 싣고 있다. 이 시인은 시적 관심이 온통 산에 집중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산에 관한 연작 형태의 시조가 언제 쯤 마무리 될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황인두의
시조는 형식면에서 너무도 시조다운 면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 초,중,종장의 음수율에
추호도 어긋남이 없고, 예시 외 4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시조의 형식을 기계적으로 따라
쓴다는 신조는 고전주의적 문학관의 사고다. 우리의 시조가 발전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교과서적 고정관념의 탈피와 기계적인 형식의 극복의지라 할 것이다. 3장 6구라는 정형의
틀을 살리면서 음수율을 음보의 개념으로 대체, 보완 한다든지, 엇시조 형태로 파격을 주는 형식의 유연한 신축성을 신뢰하는 문제라든지, 음풍농월, 화조풍월의 세계를 지양(止揚)하고
현대사회에 걸 맞는 신사고, 신서정의 시정(詩情)을 구현 하려는 창작태도를 확립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황인두의 산에 관한 연시조를 관심 있게 읽어온 평자로서 시조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선에서 위와 같이 월평에 올려 둔다.
시조의 지평을 넓히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문예사조의 시조 지면을 확대하여 시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동기부여의 모티브가 제공되었으면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