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식으로 채색된 사모곡
김성열
홍종기 시인이 추구하는 시적 주제는 고향의식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추구하는 바 그 정신세계는 자신의 성장경험이 폭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정서이다. 시인이 아닌 사른 사람들 가슴엔들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한(恨) 같은 정서가 없을까 만은 시인이 탐색해 나가는 시적 주제를 시작품으로 표출해 냄으로써 비로소 그 형상이 들어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의 첫 시집 “어머니의 강”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어머니와 고향에 관하여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살아 있는 동안 어쩔 수 없는 삶의 근원을 형성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시인이 추구하는 어머니는 어떤 형태로 형상화 되는가를 살펴봄으로서 그의 시를 폭 넓게 이해하는 단서를 찾아보고자 한다.
꽁꽁 얼어붙은 어머니의 강 위
동태가 된 바지가 빨래방망이질에 뼈를 녹이고
어름 아래 물속에서 흐느적거리다 간신히 물 밖으로 기어올라
주섬주섬 주워 담은 함지 안에서 뻣뻣하게 걸어간다.
거머리에 물려 종아리 타고 내리는 피 같이
함지 붙든 어머니 손 선혈 흐른다
(중략)
어머니는 바쁘게 부엌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오늘은 따뜻하게 잘 수 있으려나 보다
동생이 덜덜 떨며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만 깜박거리고 있다
(중략)
어머니는 늘 바람과 싸웠다
어머니의 강에서
시 <어머니의 강>
이 시에서 어머니는 꽁꽁 얼어붙은 강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어머니와 강을 동격화 시키고 있다. 시인에게서 강이란 무엇일까.
동태가 된 바지가 방망이질에 뼈를 녹인다는 이미지에서 떠오르는 것은 지난날의 가난이라 할 수 있다. 흘러내려야할 강은 얼어 있고, 더운 물에 담겨져서 빨려야 할 바지는 동태가 되어 한스러운 방망이질로 뼈를 부수듯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표출해 낸 어머니의 강은 얼어붙은 겨울의 강이다. 여기서 생성되는 어머니상(像)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삶을 이어 온 투명하고 맑은 어머니 상이다. 맑고 투명한 얼음의 이미지는 순수하고 티 없는 자식 사랑이고, 그 사랑을 받고 자라 온 시인의 정서적 등가물(等價物)이라 할 수 있다.
“늘 바람과 싸웠다/ 어머니의 강에서”이렇듯 어머니의 강을 바람과 결부시킨 것은 삶의 과정에서 본(체험) 혹독한 시련이라 하겠고, 그 시련과의 싸움이 어머니를 더없이 어머니답게 시로 형상화 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님은 밤낮으로 우셨다
무밥 속으로 스며든 눈물만 잡수시며
보리밥 속에 뿌리박은 고구마를 캐내 먹고
비워버린 그릇을 보고 따라 울던
동생의 눈물도 처절한 가난이었다.
마루 밑에 쌓여 있던 장작이
어머님의 눈물 아래 썩어가며 아궁이를 식혔어도
외장 보러 온 상인들이 피운 모닥불의 식은 숯등걸은
덜덜 떨고 있던 어머님과 우리들의 군불이었다.
밤을 헤매다가 귀가한 어머니의 찬밥 덩이는
얻어 온 김치가 간을 맞춰
뚝뚝 떨어낸 어머님의 눈물이 희석된
희멀건 국밥이 밥통을 채웠던 쓰라림은
군국주의자들을 향한 원망이었고 지금도,
용광로에 녹아내리는 쇳물 같은 복수심이다
싸라기가 밀알이 되어
깊이 뿌리 내린 어머님 무덤가에
잔디처럼 엉켜 밟아도 죽지 않는
우리들의 생명이다.
시<싸라기가 밀알이 된 어머님의 눈물> 전문
이 시에서 제시된 어머니의 상은 눈물과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는 밤낮으로 울면서 무밥 속으로 스며든 눈물만 잡수시며”로 묘사되고 있음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과 한스런 시인의 정서라 할 수 있다.
“마루 밑에 쌓여 있는 장작이 어머니의 눈물 아래 썩어갔다“는 표현에서 한스런 가난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 장작을 아끼느라 썩어가는 줄도 몰랐을 것이라는 암시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희멀건 국밥이 밥통을 채웠던 쓰라림에서 시대에 대한 원망이 쌓였을 것이고 쇳물 같은 복수심도 일었다는 것인데 어머니의 사후에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밟아도 죽지 않는 불사신의 생명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와 고향은 정신적인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머니가 뿌리의식이라면 고향은 그 뿌리를 살아있게 북돋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고향이라는 의미 속에는 자기가 태어나서 성장했던 물리적 장소와 정신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이상향이라는 관념적인 의미가 함께 포함 되어 있다. 시인의 고향의식은 물리적 고향과 정신적 고향이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리적 고향은 시의 외형적 모습으로 나타나고 내면적인 고향의식은 꼭 가보고 싶은 동경의 세계로 표출 된다. 한 시인이 추구하는 정신세계는 다양할 수 있으나 시적 형식을 통하여 양식화 될 때 홍종기의 시에서처럼 구체화 되는 것이다.
산천은 그대로 푸르게 숨 쉬고 있는데
내 어릴 적 뛰놀던 고향은 아니로다
물새 날던 남강 언덕에서 바라보며 손짓하던
친구들은 노을같이 불그레하기만 하다
비봉산 바라보니 노송만이 서글프고
지나가는 찬바람만 나를 끌어 안아주니
하염없는 눈 속 강물만 일렁이고
촉석루 돌기둥은 싸늘하게 식었구나
연화사 풍경 소리 멀리도 울어대니
세월이 성성하게 백발을 만들었고
하얀 이 드러내고 웃어두던 임들이여
이승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만날 날이
진양호 넓은 호수 돌아드는 바람들은
꽉 막힌 빌딩 피해 골목을 적시고
들뜬 마음 녹인다
시 <고향산천> 중에서
이 시에서 제시되는 풍경은 물리적인 고향의 공간에 서서 변화 된 시인의 정서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별난 기교도 부리지 않고 직설적인 표현을 통하여 꾸밈없이 진술된 것이어서 쉽게 읽혀질 수 있지만 시인의 성장 체험이 곳곳에 묻어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산천은 그대로 푸르게 숨 쉬고 있는데도 어릴 적 뛰어 놀던 고향은 아니라는 시적 진술에서 변화 된 의식 내부의 고향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의식 공간에 변화되고 성장된 정신이 물리적 장소개념을 내면의 의식 공간으로 구체화 시켜 드러내고자 함이다. 이어서, 연결된 정서적 흐름은 “노송만이 서글프고 / 찬바람만 나를 끌어 안아주니 / 하염없는 눈 속 강물만 일렁이고 / 촉석루 돌기둥은 싸늘하게 식었구나.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고향의 산천이 시인의 의식 내부에 들어 와서 정서적으로 여과(또는 채색)되어 시적 형상물로 재생산(창조) 되었다는 점이다. 연화사 풍경 소리는 멀리서 울어대고, 세월은 성성하게 시인의 백발을 만들고 그리운 임들을 이승에서 다시 한 번 만나기를 희구하는 것이다.
고향과 연결된 자연에 관한 시를 살펴보자.
저 하늘이 늘 푸르면,
저 산과 강도 늘 푸르면 좋겠다
마음마저도
손 잡고 창공을 날아보자
마음 합쳐 저 태산도 올라보자
저 강도 거슬러 오르자
넓은 바다로 노 저어 가자
태산준령 힘껏 뛰어넘어
마음의 고향, 내 고향으로
하늘 산 강 바다가
한없이 넓고 높으며 맑으니
오늘과 내일을 이어갈 무지개 위에
사랑 노래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저곳에서
일곱 빛 고운 색으로 물들었으면
좋겠다, 좋겠다.
시<모두가 늘 푸르면 좋겠다> 전문
시인이 제시한 자연은 고향의식에 뿌리가 맞닿아져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제시된 자연물은 시인이 이상으로 삼는 동경의 세계에 놓여 진 형상물(形象物)로 치환 되는 것이다.
‘저 하늘이 늘 푸르면 / 저 산과 강도 늘 푸르면 좋겠다 / 마음마저도’ 여기서 제시 된 산과 강은 고향이라는 공간에서 차용된 소재이고 푸르면 좋겠다는 표현은 동경하면서 그리워 하는 정신적 공간의 조형의지인 것이다. 시의 전편을 관류(貫流)하는 시적 정서는 이상향의 동경의지이며 시적으로 추구하는 정신세계의 전경(全景)인 것이다. ‘마음 합쳐 저 태산도 올라 보자, 넓은 바다로 노 저어 가자, 마음의 고향, 내 고향으로, 오늘과 내일을 이어갈 무지개 위에 사랑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일곱 빛 고운 색으로 물들었으면 좋겠다.‘ 등의 표현은 시인이 이상으로 삼는 내면의식의 시적형상이 되는 것이다.
한없이 후려치는 파도가 미울 때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갈등에 휩싸인 나를 바로 잡아
마음의 뼈를 예쁘게 깎아주었다
모진 세월의 바람에 살이 트고
덕지덕지 달라붙은 물때를
눈물로 씻겨 주었다
타는 태양열에 열병을 앓고 있을 때도
바다 같은 마음으로 그것을 지웠기에
더 바랄 게 없다
바다 위에 둥둥 뜬 몸이지만 결코,
빛을 잃지 않는
매끈한 사랑을 받기에.
시<바위섬> 전문
시인의 고향은 한반도 남쪽의 내륙 지방이지만 성장 후의 반생을 바다를 보면서 살아 왔듯이 바다가 제2의 고향 풍경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진저리나게 들어 온 파도 소리가 미울 때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갈등에 휩싸인 시인을 바로잡아 마음의 뼈를 깎아주는 파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본다. 바위섬은 파도로 씻기고 해풍에 견디어 오면서도 의연하게 제 모습을 지켜 온 자연물임에도 시인의 정서가 투사되어 의인화 된 생명체로 호흡하고 있다. 바위섬의 시적 화자는 바위섬과 동격을 이루면서 인간의 삶에서 부딪치는 숱한 시련과 갈등을 겪어야 하는 삶의 조건을 인간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모진 세월의 바람에 살이 트고 덕지덕지 달라붙은 물때를 눈물로 씻겨주었다는 표현에서 물때를 씻겨준 당사자는 누구인가. 물론 바람과 파도일 것이나 눈물이라는 인간의 분비물을 자연 현상과 결부시킨 시적 문맥에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된 합일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자연과 합일 된 정신세계는 영원한 유토피아의 머나먼 고향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누구나 자기세계를 갖고 있으며 그 세계를 탐색해 가면서 끝없이 사유하는 존재다. 자기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혼을 불태울 만큼 뜨겁고 진솔한 고뇌와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고향과 어머니로 대변되는 홍종기 시의 주제의식과 함께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이 드러나는 시를 살펴보자. 이러한 시편은 “고뇌” “고현산 불광사” “비움”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연탄재를 안고 뒹굴다가 폭탄의 파편처럼 뿌옇게
파란 잔디가 색과 빛을 잃고 짐승처럼 운다
오랜 산고 끝에 뱉어낸 핏덩어리
조물주의 창조력 얻은 시인의 시처럼
아! 그러나 달리다가 지친 철도의 종단역처럼
생각은 펜을 쥔 손까락 끝으로 기어들고
초읽기를 시작한 말기의 생명을 삐거덕거리며
들로 바다로 강으로 그리곤 하늘 헤맨다
가시덤불 헤치는 나와의 처절한 싸움은
생각의 골을 파며 가파른 마음을 기어올라
한 잎 두 잎 낙엽이 포근한 내일을 꿈꾸듯
밤을 재우는 넓은 가슴 알알이 여문다
눈 귀 얼어붙은 베토벤의 교향곡처럼 그 음률에
돈키호테형의 생각들로 빈 마음을 채우며
하늘빛 아래 여울지는 고뇌하는 마음.
시<고뇌> 전문
이 시의 주제는 제목에서 암시 되고 있는 바와 같이 고뇌하는 시인의 내면의식이다.
시적 상관물로 제시된 사물들(소재)이 때로는 격하고, 섬찟하고, 멀고도 아득한, 포근한 가슴이 되기도 한다. “폭탄의 파편처럼 뿌옇게” “산짐승처럼 운다” “뱉어낸 핏덩어리” “철도의 종단역처럼” “가시덤불 헤치는 나와의 처절한 싸움” “밤을 재우는 넓은 가슴” “하늘빛 아래 여울지는”과 같이 때로는 감각적 이미지로 때로는 시적 진술로 시인의 고뇌를 형상화 시키고 있다. 질서 없이 난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시종 주제의식을 잃지 않고 잘 통제된 문맥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움으로서 더 많은 걸 채울 수 있다는 진리를 터득한 양, 이 시인이 빈 마음으로 쓴 작품을 시집에서 읽을 수 있다. 빈 마음이란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아를 확립한 자세에서 울어난 태도이다. 속이 텅텅 비어 아무런 의식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잡스럽고, 혼란스럽고, 이기적인 마음을 털어내고 깨끗한 상태로 비움이란 의미다. 이 시인이 더 큰 자신의 시세계를 확립하기 위해서 마음 비우는 자세를 보여줌은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되어라
공자가 맹자에게 한 말로
정법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고
무소유의 산과 바람 앞에
언제나 나무와 햇빛 속으로
찾아 온 중생을 두들긴다
철로 만든 상자 속 부처님의
가슴 속에서 부르고 또 불러 온
갈고리로 긁어 법문을 고른다
자갈돌 하나 주워
계곡 따라 흘러가는 물 위에 던지니
풍덩하고 물속으로 곤두박질한다.
일렁이는 물속의 해가 차올라
맑고 밝은 세상 만들어
해같이 둥글게 살라 한다
산사의 법당에서 두들기는 목탁 소리
법륜(法輪)따라 온갖 탐욕 다 버린 채
똑똑 뚜루룩 모든 근심마저.
시<비움> 전문
인간이 되어라. 무소유의 산과 바람 앞에 언제나 나무와 햇빛 속으로, 가슴 속으로 부르고 또 불러 온..... 이와 같이 비움의 예비적 단계를 거쳐 일렁이는 물속에서 해가 차올라 맑고 밝은 세상 만들어 해 같이 둥글게 살라 한다. 이와 같이 비움의 자세를 확립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한 작품은 시집에 실린 전체 작품 중 극히 일부분이지만 대체로 홍종기 시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의 자기세계란 평생을 두고 천착해 나가는 끝없는 고뇌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이기 때문에 기꺼이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시인의 앞날은 무한히 열려 있으며 그 가능성 또한 무한대의 지평에 놓여 있다. 더 넓은 시의 세계로 이어가기 위하여 부단한 자기 수련과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며,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