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실린 시조 작품 2024. 12. 6 김양희 추천
문향 만리) 거울, 가을이잖아/ 김소해
거짓말은 뺑덕어미만 하는 게 아닌가 보네
여직껏 속임 없어 믿을 만큼 믿었거니
때아닌 반란을 보네 낯선 얼굴 낯선 모습
봄여름 못 보던 구석부터 뒷면까지
뒤적거려 비추며 되비춰도 흐린 초점
회전문 안에 갇힌 채 출구를 못 찾는
그럼에도 희끗한 머리 단풍 곱게 차려입고
낯선 길 돌아와 낯설지 않은 사랑 하나
거울 앞 워킹 연습이다 왠통 붉은 가을이잖아
『개화33호』(2024, 들풀출판사)
제목 「거울, 가을이잖아」가 기발하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단번에 축약하여 보여주고 있어서다. 우리는 거울을 보면서 이따금 자신의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닌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거울을 보는 일이 두려워진다. 많은 주름살과 성긴 흰 머리를 직시하는 일은 서글픔을 안긴다. 그러나 어쩌랴? 세월 앞에 장사가 없지 않는가?
거짓말은 뺑덕어미만 하는 게 아닌가 보네, 라고 능청스럽게 첫 줄을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직껏 속임 없어 믿을 만큼 믿었거니 때아닌 반란을 보네, 라며 낯선 얼굴 낯선 모습을 제시한다. 낯선 것을 두고 반란이라고까지 부르는 것은 그만큼 충격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봄여름 못 보던 구석부터 뒷면까지 뒤적거려 비추어가면서 본다. 하지만 흐린 초점이다. 회전문 안에 갇힌 채 출구를 못 찾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럼에도 희끗한 머리 단풍 곱게 차려입고 낯선 길 돌아와 낯설지 않은 사랑 하나와 만나기 위해 꽃단장, 단풍 단장을 하고 거울 앞에 서서 워킹 연습을 시작한다. 천지가 온통 붉은 가을이기에 새로운 기운을 받은 것이다.
이어서 단시조 「층간소음」을 읽는다. 아래층 아기 울음 젊은 엄마 미안해한다. 다시 들으면 새소리 자연의 소리지요. 승강기 안이 환하다. 온 마을이 꽃밭이다. 동심이 잔뜩 묻어난다. 티 하나 내려앉을 곳 없는 순수성이 곳곳을 환하게 밝힌다. 어쩌면 이리도 해맑고 밝을까? 행간에서 천사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시심은 천심이요 동심인 것을 절감한다.
김소해 시인은 시력이 어언 사십 년을 넘었다. 그간 여러 권의 시조집을 상재하여 문단의 파장을 일으켰다. 정신적 수맥을 잘 찾아 작업을 줄기차게 해왔기 때문이다. 젊은 시인 못지않게 새로운 목소리의 발현을 통해 그만의 시조 세계를 축조했고, 널리 빛을 발했다. 그러므로 그 힘으로 더욱 빛나는 시업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 시대에 시를 쓰고 읽는 일은 지극히 눈물겨운 일이다. 시라는 언어 예술보다 이미 오래전부터 영상매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좋은 시조를 쓰는 김소해 시인과 같은 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정환(시조 시인)
출처 : 대구일보(https://ww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