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세계> 2013 봄호 / 김소해 편
너는, 거기
내 여기 벼랑에서 먹먹하게 저물거든
너는, 거기 노을로 물들었다 가거라
오래 전 편지의 해답 지금 막 도착했으니
태생적으로, 운명적으로 서정에 붙들린 시편들
김소해 작품론 이경철 (문학평론가)
이 단수 서정적 절창 아닌가. ‘나’와 ‘너’, ‘여기’와 ‘거기’에 이은 초장, 중장의 대구로 확실하게 긴장된 틈새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같이 발표한 다른 시조에서는 위태롭게 보이던 시조 보법의 율격과 의미의 이반도 이 시조에서는 드러나지 않고 운율도 아주 자연스레 새로움을 얻고 있지 않은가. 단시조의 눈깔이라 할 수 있는 종장 둘째 음보 “편지의 해답”이란 보법이 아주 식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짧으면서도 정제된 서정적 울림이 노을처럼 번지는 극서정의 절창 아닌가. 김소해 시인의 신작 시조들에서 타고난 듯한 서정을 만나 가슴 울컥했다.
정방폭포, 어쩌면
풀지 못해 얽힌 매듭 여기 와서 풀어내리
곧장 내리 쏟아 그대로 바다 난간
어쩌면 천길 단애도 바람 끝의 울음이다
그랬다, 숨기지 못해 주상절리 벼랑이 높다
깊은 속 용암이 녹아 한내에는 은빛 물기둥
무지개 혼으로 살아 한라에 걸어둔다
시인과 정방폭포와 주위 풍광이 분간 없이 그대로 쫙 달라붙어 한 몸 한 마음이 된 시이다. 두 수로 이뤄진 이 시조는 앞 수 초장에서부터 난해하고도 분분한 서정의 본질이 그냥 그대로 쏟아져 드러나고 있다. “풀지 못해 얽힌 매듭”은 바다 난간에 이르기까지의 물줄기 형상일 것이다. 그러면서 또 한 생 살며 생각하며 이리저리 맺힌 시인의 삶과 사유의 이미지일 것이다. 그런 물줄기 등의 풍경과 시인의 내력이 “여기 와서”한 순간에 확 빛나는 시조이다.“천길 단애에도 바람 끝의 울음이다”는 빼어난 이미지로 시인은 물론 우주에 가득한 설움, 비애를 쏟아놓는가 하면 그래도 끝끝내 놓을 수 없는 그리움이나 아름다움, 이상향을 향한 결기를 주상절리같이 의연하게 세워놓고 있다.
그러다 마침내는 시인과 우주의 용암 같은 열정적 한 생애가 다시 무지개 혼으로 피어올라 한라에 걸린 포에지에 이른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오랜 시 읽기와 사유 끝에 시와 서정의 본질로 밝힌 ‘전 우주의 비전과, 하나의 혼의 비밀, 그리고 여러 대상의 비밀을 동시에 드러내는 순간화된 형이상학으로서의 포에지’의 실체를 이 시에서 얼추 들여다볼 수 있을 법도 하다.
이경철 : 중앙일보 문화부기자와 문호부장 2010년『시와 시학』평론 등단.
동국대 문창과 겸임교수. 『천상병 박용래 시 연구』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