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의 들녘
서당 이기호
해기둥이 솟아오르기 이전에 들녘에 나가
해 그을음에 일 끝나 돌아간다
이슬을 먹고 피는 꽃인가 햇 꽃인가 하나
자운영 꽃 망계는 멀었나 싶다
아내는 들녘으로 맛깔나게 만든
조반을 함지박속에 넣고 머리에 이고
함초롬하게 담아 내 앞에 상 차린다
여름지기의 구술 같은 땀방울
시시 때때로 논밭에 흘린다
비가 오면 도열병이 들까
바람이 불면 작물이 쓰러질까
봇물은 늘 적당하게 잠겨있을까
이삭 비료는 적당하게 주었는가
이것저것 꼼꼼히 챙겨본다
여름지기 꾼의 손질 끝에 자라
삼복더위에 이 한 몸 뜨겁게 달구고
자각질 자미지게 옛비식한 웃음
그제야 한숨 쉬는 것을 누구인들 알 것이랴
얼씨구나 절씨구나 지화자 좋다
스스로 내 마음을 달래본다
황금빛의 새 옷 갈아입고
산들 바람에 한들한들 물결친다.
* 함지박 : 통나무를 파서 큰 바가지 같이 만든 그릇. * 함초롬 : 가즈런하고 고운.
* 자각질 : 추수하는 일. * 자미지게 : “재미있게”의 제주방언. * 옛비식한 : 빙그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