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미국 땅, 남쪽의 센디애고 관광지에서 펜풀룻을 불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쓸쓸하고 서글픈 정서를 불러일으키리라. 미국 원주민의 역사가 이미 슬픈 것인데 이제는 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들이 주인 노릇하는 대륙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살아가는 이의 모습이니 더욱 허전해 보일 것이다. 펜플룻 선율도 슬픔을 불러일으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소해 시인은 그런 대상, 즉 타자의 모습을 자신과 분리해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의 펜플룻 소리를 자신이 가진, “한 개 뿐인 내 피리”소리에 연결하면서 두 소리가 함께 울려 퍼지게 한다. 피리소리는 악기의 몸, 그 빈 곳을 통과하는 공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것이니 바람소리와 늑골이라는 시어의 등장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시인의 상상력은 펜플룻의 깊은 선율에서 “피리를 불더라도 열 개나 스무 개쯤”이라는 구절을 떠올리는 데에까지 이른다. 한꺼번에 여러 대의 피리가 울려 퍼지는 듯한 것을 정확한 이미지로 구현해내는 것이다. 갈비뼈 개수만큼 구절을 통해 한 번 더 그 이미지는 강화됨을 볼 수 있다. “그 소리 꽃과 열매가 핀다 한 나무에 한꺼번에”구절이 그것이다. 피리소리들이 합창처럼 울려나오고 그 소리는 몸속 깊은 곳을 통과하는 바람소리로 인해 생성되는 것이니 그처럼 대단한 소리가 지닌 생명의 힘을 생각해 보면 한 나무에 한꺼번에 꽃 피는 일이 놀랍지 않겠다. 꽃만 한꺼번에 펜플룻 음악소리에 피어나랴? 아예 열매도 꽃과 함께 핀다고 노래한다. 첫수에서 장엄할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한 소리와 풍경이 펼쳐지게 만든 다음, 김소해 시인은 돌이켜 고적한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한 개 뿐인 피리의 등장을 둘째 수에서 보게 된다. 가엾은 소리로 표현된 그 소리조차 늑골을 울리고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늑골을 거쳐 왔으니 그 피리소리는 필경 영혼의 소리이겠다. 홀로 짚어보는 한 생애의 자취겠다.
그처럼 첫수에선 합창과도 같은 장엄한 음악을, 둘째 수에선 혼자 조용히 부르는 독창의 선율을 제시한 다음, 시인은 마지막 수에서 다시 한 번 첫수에서 느낄 수 있었던 비상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순간, 깃털이 새로 돋고 구절을 보자. 미국 원주민들이 머리에 꽂곤 하던 것이 깃털이기도 하지만 깃털은 새의 이미지를, 그리고 그에 따른 비상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재이다. 음악에 맞추어 꽃과 열매와 깃털의 이미지가 함께 유희를 벌이는 텍스트의 공간이 먼저 준비되었다. 그 공간을 열어두고 김소해 시인은 그 한가운데서 처음 만난 타자와 주체가 함께 서게 만든다. 공감하며 서로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소재들은 사방에 널려있다. 누군가가 연주하는 슬픈 음악에서도 이 땅의 작은 생명에게서도, 그리고 담벽을 타고 오르는 장미 넝쿨에서도 시인들은 삶의 자세를 배우고 지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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