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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어머니의 언덕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8238 등록일: 2014-09-02

어머니의 언덕

 

20142월 어느 날이었다. 병원에서 외출을 나와 여느 때처럼 영주공공도서관에서 집필을 마치고 꽃동산 로터리 버스 정류장에서 오후 448분에 도착하는 병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내 마음이 초조하고 몸 둘 바를 모르고 마음만 급해지던지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을 모르니 어찌 마음 편하게 있겠는가? 그 흔한 만 원짜리 손목시계 하나 없이 손 전화만 믿고 다녔었는데 그나마도 건전지가 나갔으니 이거 뭐 계속 서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이미 버스는 떠났다고 생각하고 평안하게 걸어가야 하는지 좀처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시간은 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성이다가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이르러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나이 드신 여자 두 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성큼 다가갔다. “! 죄송합니다만 지금 시각이 몇 시나 됐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두 분 중 한 분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호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더니 손 전화를 꺼내어 뚜껑을 열고는 “445분인데 어디 가는 버스를 기다리세요?” 하고 물었다. 나는 말하기 좀 겸연쩍기도 해서 얼른 대답 못 하고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겨우 입을 열수가 있었다. “새 희망 병원 448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시계가 없어 답답해서요. 버스가 이미 갔다면 마음이라도 편하게 그냥 걸어가면 되는데 만약 아직 시간이 남았다면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분은 내게로 가까이 왔다. “! 그렇구나. 저도 지금 새 희망 병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예요. 마침 잘 되었네요. 같이 타고 가고 심심치 않고 더불어 갈 수 있으니 좋겠네요. 그런데 새 희망 병원에는 왜 가세요. 어디가 아프신가요?” “! 예 제가 기분이 우울증이 있어서요.” 그분의 손을 자세히 보니 전도지가 들려 있었다. 아주 선명하고 큰 글씨로 영주 제일교회 라고 쓰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교회 나가세요?” 묻는다. “아니요. 대전에 있을 때는 열심히 다녔지만, 영주 내려와서부터 가슴에 와 닿는 교회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못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시 손 전화를 내려다보더니 말한다. “448분 차인데 아직 3분이 남았네요. 저는 영주 제일교회 최 영희 집사입니다. 제 아들도 새 희망병원에 입원해서 있거든요.” “몇 층인데요.” 하고 물었다. “5층 에요.” “그러세요. 저는 3층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아들 모르겠네요.” “그렇지요. 3층과 5층이니까 전혀 볼 일이 없지요,” “아 저기 버스가 오는군요.” 하고는 재빨리 손을 들어 버스를 세워서 친절하게 먼저 타라고 하더니 내 옆에 앉았다.

교회 나오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병을 다 고쳐주십니다.” 나는 모르는 척 물었다. “어느 교회 다니세요.” “영주에서 제일 큰 교회 영주 제일교회 나가요.” 그러면서 전도지를 내 손에 꼭 잡아 주었고 병원 도착해서도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로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전화라고 해봐야 외출하는 날 제외하고는 켤 수가 없으니 받을 일도 없었다. “이번 주부터 우리 교회 나오세요. 토요일 날 제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순간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했다. 더는 영주에 머무를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생각하여 대전으로 올라가기로 작정하고 이미 며칠 전에 일부 짐까지 옮겼는데 이게 웬 생떼란 말인가? 과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 항상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가 기도의 감이 오지 않으면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하나님 나의 하나님 당신의 뜻이 아니거든 나를 다시 이 자리에서 끌어 내리시든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시든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고는 밀어붙였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최영희 집사님을 비롯하여 대전에 간 이 형에 길동이 형, 의성이, 심지어 버스 기사 아저씨까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까지 다 쭉쭉 올라가지 말고 그냥 영주에 뿌리를 내리라는 말을 줄줄이 꿰놓고 있었다. 이게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래 기도 하자.” 당차게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미 답을 나와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토요일 도서관에서 막 집필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영주 제일교회 최영희 집사입니다. 별 일없이 잘 지내셨지요.” “! 예 안녕하세요.” “어떻게 내일부터 나오실 수 있으세요.” 남에게 부탁하는 것은 못해도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니 어찌하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원래 저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살다 보니 어떻게 해서 아무 연고도 없는 영주 온 지가 벌써 1년이나 넘도록 나가야지. 마음뿐이지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쉽게 나가지질 않아서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새벽 기도 중에 자꾸 생각나서 전화했습니다. 내일 나오세요. 마음은 격동하기 시작했다.

누가 내 속을 알까?” 대전이냐? 영주이냐? 드러내놓고 성질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못 간다고 하지도 못하겠고 , 무슨 일이 또 이렇게 꼬이나?” “내일 어디에서 만날까요?” “영주 지리 잘 아세요.”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꽃동산은 압니다.” “그러면 병원에서 910분 차 타고 나오셔서 꽃동산에서 내리세요. 그러면 제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럼 내일 뵈어요.” 찰칵 전화는 끊어졌고 나는 뭔가 싶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진작 말씀하시던가. 인제 와서 일 다 저질러 놓고 나더러 무엇을 어찌하라고 ····.

기도하면서 기다리며 견디어 보자. 마음을 추슬렀다. 금방 주일날은 찾아왔다. 자꾸만 망설였다. “아니야. 교회는 대전에도 있는데 가는 게 맞아. 아니! 아직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어. 내가 남아야 하는지 올라가야 하는지.” 마음 격동의 시간이 가면서 점점 세차게 조여들어 왔고 분별력은 희미해져 갔다. 애라, 나도 모르겠다. 외출증을 끊고 빈손으로 나와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달렸다. 겨우 몇 정거장을 지나 바로 꽃동산이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마중 나온 집사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어서 와요.” 하시더니 매우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안내했다. 따라가서 보니 영주선거관리위원회 앞이었다. 두 분의 권사님이 교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조금 있으면 아들이 온다고했다. 하지만 아들은 병원에서 교회로 간다는 연락이 왔으며 우리는 교회 버스에 몸을 실었다. 10여 분 갔을까? 드디어 버스는 교회에 도착했고 나는 많은 사람 틈 사이에 끼어 집사님을 따라 내렸다. 병원에서 도서관 외출을 나올 때마다 우연히 영주 제일교회 앞을 지나쳐가곤 했었는데 또 이런 인연이 될 줄이야.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오래된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온화한 느낌이었다. 낯설지도 않으면서도 꼭 한 번은 언젠가 꼭 들려야만 할 곳을 여유 있게 지그시 찾아왔으니 마음이 다 편안하고 안락하면서도 평온했다.

거의 2 ~ 3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교회 그동안 나가야지 하면서도 쉽지만은 않았던 지난날들. 나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왜 떠나 있었을까? 아무 부담도 없이 매우 평안한 마음을 얻어 모처럼 깊은 안식을 누렸다. 예배를 마치고 집사님을 따라 지하 친 교실 (식당)로 내려갔다. 집에 있을 때 그렇게 좋아했던 국수가 나왔다. 조금은 아쉬웠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잔치 국수보다는 그래도 비빔국수가 더 좋은데. 그저 마음의 아쉬움에 입맛만 쩝쩝거렸다. 하지만 잔치국수는 나름대로 육수의 감칠맛에 속이 다 개운하게 풀렸다. 이렇게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집사님은 바나바 사역하시는 권사님과 함께 매주 1층 쉴만한 물가로 데리고 가셨다. 왜 그랬을까? 참 시원하게 입맛을 당기는 팥빙수와 차를 함께 나누면서 짧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이것도 부족하셨는지 매 주일이면 꼭 집에 들렀다 가라고 데리고 가서 커피와 식사를 나누기도 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추 전을 뜨거운 불 앞에서 굵은 땀을 흘리시며 해주시고 떡국을 끓여주시는가 하면 토마토, 포도, 방울토마토, 김밥, 그리고 중복 때에는 아주 큼직한 닭백숙 해주셨다. 갈 때마다 어떻게 해서라도 저녁까지 해서 먹여 보내시려고 나를 붙드셨고 갖은 정성의 양념을 뿌려 포도 한 송이, 사과 하나에 바나나 한 송이라도 더 싸주시느라 정말 많은 애를 쓰셨다. 그런가 하면 4월의 어느 날이던가. 5월의 어느 날이던가? 나와 교 순이 형을 데리고 봉화까지 가서 송어 회를 사주었다.

세상에 누가 나한테 이렇게 할까? 아니 섬길까? 나는 점점 더 고뇌하기 시작했다. 가야 할 것인가? 남아야 할 것인가? “이게 아닌데 ···.” “어떻게 이런 집사님을 외면한 채 떠난다는 말인가? 그래 내가 떠나야 할 때 붙드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내 사랑하는 사람도 지켜야 하고 집사님도 지켜야 하고 의성이 공무원 시험 때까지는 옆에서 지켜주어야 하고 길동이 형을 생각하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며 앞으로 믿음 생활도 지켜야 한다. 집사님은 인제 그만 퇴원하고 방세 안 받을 테니 집으로 들어와 지내라고 했다. 하지만 난감했다.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인 데다가 방세를 받지 않겠다는 말씀도 부담되면서 더구나 딱히 하는 일도 없어 폐가 되지 않을까? 매우 조심스러웠다.

결국, 3월에 나온 이야기를 놓고 5개월이나 지난 81일 나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영주로 전입하고 난 후 대전에 올라가서 정리하고 내려오는데 왜 그렇게 쓸쓸하면서도 뭔가 마음에 빼앗긴 듯한 무게만 가득하던지. 그래도 집사님과 의성이 그리고 길동이 형이 있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현실감은 경쾌했다. 어머니 같은 집사님 손맛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내 기쁨이다. 노인네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뭐든지 해주는 대로 맛있게 먹고 사주는 대로 입는다. 그런 나를 보면서 화들짝 웃으시며 작은 것에서 행복해하시는 모습에서 세상 떠나신 어머니가 한없는 그리움으로 걸린다. 그동안 다하지 못한 효도 인제라도 다 하면 좋을 것을 ···.

오늘은 참 못할 일을 시켰다. 빨래만큼은 절대 폐를 끼치지 말자면서도 끝내 노인네 힘들게 옷까지 갈아입고 말았다. , 대단하다. 온종일 일하고 퇴근해서 돌아오면 각종 빨래와 집안일을 다 하시고 새벽 기도 하랴! 말씀 보랴! 정신없다. 어제는 교회에서 나와 의성이, 교 순이 형을 앞에 앉혀놓고 당신은 안 드시고 세상에 세 자식에게 고스란히 국수를 나누어 주셨다. 인제야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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