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쓸 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글 앞에서 고뇌롭게 변한다. 특히 수필은 사실적 바탕으로 묘사하여 쓰면서 문득 이렇게 써도 될까? 망설이게 된다. 보니 본래 글이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잊히지 않게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어떤 사물에 은유적, 해학적으로 이 시대를 빗대어 비판하기도 하고 파헤쳐 문제를 제시하는가 하면 본래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여 영혼을 노래하기도 한다. 때로는 공과 사를 분별하여 써야 하고 공평한 추를 가지고 삶을 논하며 문학적 관점을 지켜나간다. 특히 요즘은 시민문학의 시대이다. 작가도 한 시민이고 독자도 한 시민이다. 작가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일까?
시민이다. 아니 서민이다. 그들의 삶의 애환을 가장 잘 알고 공유하며 함께해 나간다. 따라서 모든 글의 소재는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이다. 이런 점에서 대중문학에서 또 시민문학의 시대가 되어 가는 것이다. 아주 소박하고 서민적이며 욕심부리지 않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이야기를 옆에서 귀 기울여 적는 것이다. 아니 공감하는 대로 쓰는 것이다. 작은 일에도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자기 것이 아니면 더는 바라지도 않으며 자족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 알맞은 생활에 젖어 버린 사람들. 그저 거짓 없이 숨기지 않고 보태지도 않고 솔직하게 써내려갈 수 있는 전혀 부담 없는 삶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곧 삶을 취재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작가는 기자이다. 생활기자. 삶을 쓰는 것이다. 독자라면 이 나라의 국민에서 시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가슴을 적시는 진솔한 이야기. 다름 아닌 나 같은 사람들. 작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좋을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활동이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준다는 것 이보다 더 큰 기쁨이 또 어디 있으며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남을 사랑할 자격요건을 진실하게 갖추는 기회이며 먼저 사람을 통하여 감동은 격동하고 감격의 눈물은 솟는다. 예부터 글쟁이는 칼잡이와 같다는 말이 있듯이 어떠한 캐릭터를 가지고 글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글은 살기도 하며 죽기도 한다. 또한, 주인공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모든 사건의 전개에서 뒤처리까지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함께한다.
이 점에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진다. 이를테면 선과 악을 주제로 한다면 당연히 선을 살리고 악을 죽일 것이다. 하지만 악을 선으로 화를 복으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악에서 선으로 옮기고 화를 복으로 옮겨갈 수는 없는 것일까? 말하자면 모두를 살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형제가 잘못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했다. 잘못은 했지만 탕아가 집을 나간 것처럼 선을 떠나 악한 자들에게 돌이켜 다시 선하게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과 기회를 주고 기다리는 방법이다. 꼭 처벌하고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자와 용서 받는 자의 기회를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는 세상을 그리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문법의 인권이다. 어떤 캐릭터를 통하여 글을 쓰든지 생명을 살리고 인간이 인간의 권리를 가지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옮기는 것이다. 이는 살생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잘못함으로써 회개하고 돌아올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살려야 할 사람을 억울하게 죽일 수는 없다. 그 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다수를 원하기보다는 소수를 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은 아주 자연스럽게 선에서 악으로 합쳐지거나 선 아니면 악으로 나누어져 갈 것이다.
특히 내 일상을 소재로 할 때 작가의 위험부담과 표현의 자유에서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가명을 쓰거나 아니면 수필과 시를 쓰면서 피해서 캐릭터를 설정하여 간접적 묘사에 바탕을 두고 쓰기도 한다. 물론 소설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인권이 없다. 오히려 인간의 권리를 작품성에 집중한 나머지 가시적이고 상업적인 글에 바탕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원하는 세상 이야기가 그리워지면서 보고 싶어진다. 작가의 주관적인 사상과 철학이 강하게 피력된다. 말하자면 독자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 위한 작품이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매우 사실적인 작품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문학이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까울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고뇌의 시작이다. 내 일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싫은 사람, 다 있는데 좋은 것만 쓸 것인가? 나쁜 것만 쓸 것인가? 아니면 좋고 싫고를 떠나서 상업적으로 쓸 것인가? 어디까지 표현하고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 결국, 누군가는 죽이고 누구는 살리는 전개를 통하여 전율이 흐르는 전선을 형성하고 절정을 향하여 갈 것이다. 우리는 아주 흔하게 말하고 듣는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줄 안다고.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말이 있다.
남의 모습은 곧 나라고.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다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며 그 마음이 똑같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은 것이요. 내가 좋으면 남도 좋은 것이다. 세상은 다 내 마음 같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만 상황이나 환경에 다른 지배를 받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고생하는 사람이 고생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고 홀아비 심정 과부가 안다고 한다. 더 쉽게 말하면 아주 가벼운 종이 한 장의 차이 처지와 형편과 사정이 다를 뿐 알고 보면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고 쥐구멍에도 해 뜰 날 있다. 아무리 돈이 많으면 무엇 할 것인가?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요. 내 삶으로 다시 돌아올 것들도 아니거늘 그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오늘 돈이 있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내일이라도 죽는다면 놓고 가는 것일 뿐인 것을 이것이 나그네 신분이다. 결국, 사람은 살기 위해서 일하고 돈을 버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돈은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도구에서 더 미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인간의 권리는 무엇일까? 인간으로 한 번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한 궁극적인 목적은 죽음 앞에 놓고 바라보는 것도 아니며 썩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인간답게 일하고 떳떳하게 얻어서 적당하게 쓰다가 가는 것이다. 죽음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과연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오직 생명이다. 그리고 무엇을 깨달았을까? 살아온 날들의 후회와 감회가 엇갈릴 것이다. 사는 것이 무엇일까?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가? 가는 자와 남는 자의 이별일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그 어느 것도 다 소용없다는 것일 것이다. 돈이 많아서 잘 사는 것일까? 과연 그럴까? 아니다. 삶의 질은 돈에 있지 않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돈은 적당하게만 있으면 된다. 때에 따라서는 남에게 도움 받으면서 때로는 도움 받으면서 사랑으로 더불어 살면 된다. 곧 사랑의 순간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아니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시간이다. 적지도 않고 남지도 않게 적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 나와 같은 사람이 있고 나와 같은 사람을 알고 돕는 이웃이 되는 것이다. 돕는 배필에 돕는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 이 지구 상의 최대의 행복일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여 돕는 이웃으로 심히 보기에도 좋게 살아가는 문법의 정신으로 글을 쓰자. 인간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인간의 삶을 온전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으로 지켜나가자. 이것이 오늘 작가의 사명이다. 인간의 사정을 인간이 알지 누가 알 것이며 인간의 사정을 인간이 알아주지 않으면 과연 누가 알아줄까?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야 한다.
이것이 사랑의 공식이다. 어쩌면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으로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궁극적인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인권을 지켜야 하며 인간을 근본으로 삼아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문학은 역사의 기록이며 또한 서민이 시대를 대변하는 대중문학, 시민문학에 바탕을 두고 사람을 지켜야 한다. 이제 문학에도 인권의 순리를 기록하고 심어나가야 한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따뜻한 밥을 주어 배불리 먹게 하고 가난한 자를 베풀어 돌보며 없는 자를 있는 자 같이 섬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버금가는 인권이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문학도 인권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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