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미안해
海月정선규
참, 세월이 빠르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을까? 요즘 나는 벌거벗는다. 다시는 생각을 말자 하면서도 왜 그렇게 화인처럼 뚜렷하게 나타나는지 물귀신처럼 괴롭힌다. 다 잊고 살다가도 때가 되면 돋는 병처럼 느닷없이 찾아온다. 추정리 TK를 다니면서 누나를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내 사랑하는 후배의 누나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TK에 입사하면서 같은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부터 누나를 더 알게 되었다. 평소에 누가 봐도 착하고 참한 주부로 보였던 누나였고 늘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온 힘을 다하는 모습으로 열심히 살았다. 보기에도 선하고 부드럽고 천사 같이 유순하면서도 남에게 단 한 번의 해도 끼칠 줄 모르던 누나였다. 왠지 그런 사람이 있지 않던가?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하고 정이 가는 사람 말이다. 흔히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듯 전생에 그 어떤 인연을 맺었던 사람이다 싶은 아주 보기에 편안해 보이면서 주위 사람에게 쉽게 친밀감을 주면서 포근하고 안락한 감정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있다. 누나의 인상이 그랬다. 특히 내 후배의 누나라면 내 누나와도 같았기 때문에 더 정감이 갔다. 후배를 만나러 가다가도 길에서 마주치면 서로 아는 체를 하며 “밥 먹었어.” 하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정말 오누이처럼 가깝게 허물없이 지냈다. 시간이 가면서 나는 그 직장을 그만두었고 그 후에는 교회나 후배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얼굴 보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 남편이 누나의 직장생활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탓에 얼마 못 가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오면서 가면서 아이들과도 만나면 “엄마 집에 있니.” “예” 하면서 가깝게 지냈다. 그리고 간혹 길에서 만나면 누나가 커피 한잔하러 와라.” 하면 “나 커피 안 좋아해.” 하고는 가지 않았다. 누나이든 아니든 어쨌거나 남의 여자인데 괜히 오해받을 일은 처음부터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았지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냈던 것이 때로는 그 남편과도 만나서 이야기하고 전부터 얼굴만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몰라도 점점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까지 가면서 이제는 서로 알만큼 잘 알고 믿을 만큼 믿는다 싶어서 심심하면 누나한테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김 아무개 노 아무개 안부도 물어보고 지금도 만나는지 안 만나는지 다들 잘 지내고 있으며 오늘까지 잘 다니고 있는지 어디로 옮겼는지 그렇게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지냈다. 시커먼 밤에 가는 것도 아니었고 후배가 안 보이거나 어디 다쳤거나 어디를 갔다든가 해도 궁금해서 누나한테 뛰어가서 물어보고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전해 듣기도 했는데 아뿔싸 이것이 한 가정을 깨뜨릴 줄이야. 그 누가 알았을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단지 누나네 집에 간다는 생각만으로 오고 갔고 그 남편과도 집에서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같이 먹기도 하면서 전혀 눈치도 못 챘는데 나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앞에서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누나만이라도 너와 나 사이를 우리 남편이 의심한다고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누나는 매일 내가 찾아가도 여느 때처럼 반겨주었고 커피를 정성스럽게 타주었다. 그 남편 또한 내가 간다고 해서 싫은 기색 한 번 없었는데 세상에 나 때문에 이혼하고 남편은 충북 옥천으로 누나는 천안 언니네 집으로 헤어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제 아빠가 데리고 갔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보이던 누나가 활짝 열려있던 대문이 불현듯 어느 날부터 누나와 그 가족은 보이지 않았고 대문은 언제나 주인 없이 굳게 닫혀 있었다.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후에도 자주 그 집에 들렀으나 그 누구도 나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후배의 입에서 나왔다. “누나 이혼했잖아.” 그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놀라는 것뿐 아무것도 없었다. 난데없는 말에 오직 “왜” 한 마디였다.
후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불만스럽게 말했다. “미친놈이 형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가지고 어떤 사이냐, 두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서 누나를 많이 괴롭히고 손찌검을 했었던 모양이다. 왜 바보 같은 누나는 그 말을 그렇게 모질게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 억울함을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미 한 가정은 파탄이 났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없는 상황이었다. 누나는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을까? 내색 한 번 내지 않고 가는 그날까지도 말없이 있다가 이혼이라는 엄청난 일을 당하면서까지 고난을 겪어야만 했으니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멍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후배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왜, 누나고 네 매형이고 너이고 말하지 않았니? 나만 모르고 있었잖아. 나만 바보가 되었잖아. 누나는, 누나는 지금 어디 있는데.” 후배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답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형하고 누나하고 무슨 사이라고 그래. 세상에 형하고 누나를 의심하는 그놈이 나쁘지.” 하고는 하던 톱질만 하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뭐가 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 다들 나한테만 숨기고 있었는지 그것도 어머니까지도 나한테 일말의 틈도 없이 숨기고 말하지 않았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러가고서야 어머니 집에 갔더니 점심 밥상을 차려주시다가 어떻게 말씀하셨다. “세상에 그놈이 너하고 어떤 사이냐, 둘이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며 때리고 부수고 해서 견디다 못해 끝내 아이들까지 다 주고 이혼을 했다.” 하시면서 그런 미친놈이 어디 있느냐며 어디 의심할 사람이 없어 너 같은 사람을 다 의심한다며 말씀하셨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을 수 있을까? 누나를 그렇게 의심하면서도 정작 왜 당사자인 나한테는 전혀 내색조차 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 남편의 행동이 더 이상하게 다가온다.
남들 같으면 나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을. 쫓아와서 나하고 같이 죽자고 난리에 난리를 피웠을 것을 아니 그렇고도 남았을 것인데 왜 누나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이혼했다는 말인가? 하나의 이혼할 사유에 악용한 것은 아닐까? 그 속이 미묘하다.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데도 과거의 사건이 지금 왜 자꾸만 떠올라 마치 내가 지금 발가벗은 것처럼 나의 짐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일에서 인지 이렇게 저렇게 다 생각해보지만, 결론은 없고 나 자신이 미울 뿐이고 후회가 될 뿐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누나하고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집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거늘 왜 이렇게 모질게도 지나가고도 무엇이 부족하여 나를 괴롭히는가? 자다가도 앉아있다가도 그 일이 생각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쌍소리가 튀어나온다. 어떨 때에는 미칠 듯이 마음이 아프게 치밀어 오른다.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한 가정을 아무 죄도 없는 누나의 운명을 참으로 고달픈 삶으로 바꾸어놓았다는 것이 내 자신에게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돌이켜 다시 그 시절 그때의 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누나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없도록 막을 텐데. 이게 뭐란 말인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어지럽고 더럽다. 하지만 그 일부의 몫이 내게 돌려져 있었다니 정말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죽일 놈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정작 그 당사자의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 뭐 이런 일이 내게 다 있단 말인가? 나는 싸운다. 지난 과거에 인제 와서 무엇을 어떡하겠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꿈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도 나는 내 갈 길을 가야만 한다. 과거에 집착해서 더는 자신을 황폐하게 하고 쓰러질 수는 없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질 수는 없다. 나는 이기기 위해 살아왔고 또 이기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존재를 잊을 수는 없다. 지금은 그 후배와도 누나와도 어머니와도 연락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살아 계시는지 돌아가셨는지 다른 사람보다도 유독 어머니 생각이 더 나를 아프게 한다. 딸의 그 모진 삶을 말없이 인내하며 끝까지 지켜보면서도 나에게 원망 한 번 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사위의 못난 탓으로 돌리셨던 어머니 뵌 지도 꽤 오래 아니 몇 년이 지났다. 아마 연세가 있으셔서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앞선다. 세상에 노인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누나가 무슨 죄가 있다고. 모진 세월을 보내고 누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아이들은 많이 커서 처녀, 총각이 다 되었을 텐데. 그 아이들만이라도 먼발치에서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녀석들에게는 내가 죄인이다. 제 엄마, 아빠를 헤어지고 만들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까지도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게 했으니 참 나 자신이 생각해 봐도 뭐라 해야 할지 할 말이 없다. 글쎄 제 엄마를 찾아서 지금은 같이 살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고 아니면 아직도 그 헤어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말없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고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이며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머리를 스친다. 사람답다는 것과 사람다운 것이 참 어렵게 들린다. 내가 앞으로 하루, 혹은 이틀만 살 것도 아닌데 또 별의 별일이 다 있을 것이다.
다양한 성격, 다양한 개성, 다양한 생각, 다양한 삶, 그 다양하다는 것이 서로 다르고 부족하기에 채워주고 허물을 덮어주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삶의 기준이 되어 조화롭게 살아가면 좋을 것을, 오늘은 내가 아닌 듯하고 낯설기만 하다. 이제는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삶을 살게 하면 안 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자신을 겸비한다.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으며 내 생각과 내 마음이 어디 있던가? 오늘을 살아가는 삶에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