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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그녀와 함께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0575 등록일: 2010-10-12
그녀와 함께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철모르고 겁 없었던 20~10대가 좋았지 싶다
이제 막 새내기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어느 해 서울에 있을 때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일단 집에 들렀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교회친구들과 만났다
충청도 그 흔한 말로 겁나게 반가웠다
서너 명 정도 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중에 한 명은 여자였고 나머지 나를 비롯한 3명은 남자였다
우리는 그날 저녁에 만나서 밤이 늦도록 그녀의 자취방에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나는 밀려오는 피로에 못 이겨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자다 보니 인기척도 말소리도 없이 아주 조용했다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었다
발아래 무엇인가 걸리는 것이 있어 일어나 보니
그녀가 머리를 거꾸로 한 채자고 있었다
나는 놀랐다
가만히 일어나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별이 반짝이고 있었고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신체검사 마치고 서울로 향했다
그녀는 내게 추억의 활력소이다
경주에서 직장생활 때 어떻게 하다 내 생일을 그녀가 알게 되었었는지
그것에 대한 기억은 지금 내게 없어 모르겠다
다만 경주와 금산을 한 달에 한 번씩 오르내릴 때 그녀를 비롯한 많은
교회 친구를 만났었다는 기억만 뚜렷하다
아무튼 그녀가 말했다
"오빠 내일 아침으로 우리 집으로 와"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내일이 오빠 생일이잖아"
나 자신도 내 생일을 잊고 살아가며 어머니를 빼고는 아무도 모르고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그녀는 내게 생일상을 차려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참으로 놀랐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겁나게 고마웠다
아침 일찍 그녀의 집으로 나는 갔고 그녀는 정성껏 차린 아주 하얀 밥과
미역국 몇 가지 정성을 들여 만든 반찬으로 내왔다
내가 지금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것은 내 생애 처음 그때 타인으로부터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생일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은 밥한 술 뜨지 않고 먹는 나만 바라보았다
내가 두 그릇의 밥을 다 비우지 언제 그렇게 준비해놓았는지
꽃다발을 안겨주었는데 아마 생화가 아니고 조화였던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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