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주에 와서 삼 봉을 알았다. 삼 봉, 삼 봉, 어딘지 모르게 운이 무겁게 떠오르는데 무슨 뜻일까? 얼핏 생각하기에는 왠지 촌스럽기도 하고 발음이 무거워 가라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윤 영 원장의 교육시간을 통해서 삼봉은 세 개의 산봉우리를 뜻하는 것이며 삼봉 정 도전 선생의 호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삼 봉 정 도전 선생의 호를 따서 병원이름을 삼 봉 이라 지었던 것이다. 그만큼 이 윤 영 원장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삼 봉 정 도전 선생의 펜이다. 세 개의 산봉우리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삼각형의 관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 마치 이산 저산으로 건너가는 길목의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또 달리 생각하면 참살을 당했다고나 할까? 떨어져 나간 머리 없는 다리랄까? 혹은 본래 산삼이었던 것을 누군가 도끼를 가지고 와 찍었을까? 줄기와 잎은 온데간데없이 뿌리만 남아 겨우 산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까? 세 친구가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서 있다고 할까? 아니 그보다는 조직폭력배가 앞을 막고 있다고나 할까? 병풍처럼 늘어서서 아침에 떠오르는 밝은 태양은 머리에 이고 지고 들리지도 않으며 잘 났다고 생색 한 번 내지 않으며 소리소문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산의 일을 잘 보고 있다. 우리 시골의 주먹 산이 번뜩 떠오른다. 영락없이 사람이 주먹을 쥐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뒤에서 태권을 외치면 더 좋을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저 주먹 줄기가 백두대간으로 흘러내려 태백산맥과 합일을 이루고 소백산맥과 합일을 이루어 더 뿌리 깊게 이 땅에 섰으면 좋겠다. 그런가 하면 우리 시골에 가면 지붕 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정말 지붕 모양을 하고 우뚝 서 있다. 바로 코앞이 내 집이라는 안도감을 항상 주었던 지붕 산 정말 내 꿈이기도 했다. 저렇게 큰 집을 지어야겠다. 내 평생 저런 집에서 살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외치고 있었다. 몇 년 전 참으로 앞이 캄캄한 일이 있어.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보았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성경 한 구절 찬송가 한 구절에 이끌리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지만 산아! 산아! 교만하지 마라. 네가 너를 보았노라. 그리고 알았노라. 네 능선을 보니 한 여자의 다리맵시와 같고 또한 관능미와 같구나. 네 몸의 부스러기 한 줌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니 산 옆에 산이 맞는구나. 멀리도 못 가고 옆에 옆에서 쌓이고 쌓여 퇴적하니 다시 높은 산이 되지 않느냐. 나는 펜을 들었다.
산아! 산아!
海月정선규
산을 우러러 본다 흘러내리는
산허리 능선 줄에 눈길 주니
매끄러운 네 관능미에
눈길이 미끄러지는구나
산은 높다지만 네가 땅에서 풀려
어디로 가겠느냐 네가
하늘까지 끝까지 높아지겠느냐
아니면 우주를 뚫고 뻗치겠느냐
네가 하늘 아래 매였도다
누가 너를 보고 높다 하며
그 누가 너를 우러러보더냐
참으로 내가 널 오해 했구나
너를 몰랐어
능선 자락을 쫓아 살포시 흘러내리는
한 줌의 흙을 보지 못했어.
자꾸 퇴적하여 가는 작은 산인 것을
어떻게 보면 정말 산이라는 상징성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미친다. 세 개의 산봉우리는 촛불이며 뻗어 내리는 산줄기는 촛대이리라. 사람이 등불을 켜서 등 경 위에 등불을 올려놓고 모든 사람을 비추어 세상을 밝히나니 이 세 개의 빛으로 타고나는 그 어떤 인물을 불러일으켜 오는 듯하기도 하다. 과연 그 시대에 삼봉 정도전은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꿈꾸고 있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백성을 바라보고 어떤 정치적 야망을 품고 있었을까? 그의 정치철학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정치인으로서 이 땅에 무엇을 실현하고자 했을까? 정 도전은 조선왕조를 설계한 인물이다. 경복궁이나 종묘 서울 도성(都城)을 보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이다. 그것은 정도전이 조선왕조를 설계(設計)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500년을 통하여 가장 위대한 정치가를 꼽으라면 정도전(鄭道傳)이다. 그리고 조선왕조 역사 속에서 아니 현대 정치사를 포함해서 세계정치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우뚝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는 정도전이 이방원에 의하여 역모의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후 정도전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이 이방원 일파에 의하여 많은 부분이 왜곡된 가능성을 학자들은 지적하면서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에 대한 새로운 조명(照明)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정도전은 1398년(태조 7년) 8월 26일 이방원(李芳遠)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에 희생된 후 무려 467년이 지난 후인 1865년 고종황제 2년 때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그 설계자인 정도전의 공(功)을 인정해 복권(復權)된 것이다. 정도전을 조선왕조 설계자라 하는 것은 그가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기 3개월 전에 완성했다는 그의 마지막 저서인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기록한 내용대로 〈불교, 때문에 부패한 고려왕조〉를 마감시키고 이성계와 같이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왕조를 건국하였다. 조선왕조는 무인(武人)인 이성계와 문인(文人)인 정도전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정도전은 조선왕조라는 신생국가의 원대한 설계를 하여 놓고 그 꿈의 실현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방원에게 살해된 것이다. 이것은 조선왕조와 우리 민족의 불행이다.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헌법인 〈조선경국전(朝鮮經國 典)〉을 편찬(編纂)하여 그 토대 위에서 조선왕조를 설계하였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 典)은 중국의 주례(周禮)를 본받은 것이다. 중국의 주례(周禮)는 왕망(王莽BC45~AD 23)이 지은 것으로 왕망은 중국 전한(前漢) 말의 정치가로서 개혁정책을 통한 이상적인 나라를 세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주례(周禮)에는 궁궐의 위치를 백악(白岳)을 주산(主山)으로 삼으면서 남쪽을 향하도록 하고 가운데 경복궁(景福宮)과 좌우에 종묘(宗廟)와 사직단(社稷壇)을 양쪽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도성(都城)을 쌓아 국가의 틀을 갖추고 조정에서는 관직(官職)을 두어 국가의 질서를 확립하고 왕권(王權)을 제약(制弱)하고 재상(宰相 국무총리)이 실제로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 제도를 두었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 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조선왕조를 민본사상(民本 思想)의 이상적인 국가로 삼은 것이다. 민본 사상이란 임금을 상위(上位)에 두지 않고 백성(百姓)을 상위(上位)에 두는 것이다. “김용옥이 쓴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에 의하면〈조선경국전(朝鮮經國 典)〉의 총론에 해당하는 정보위(正 寶位)를 정도전은 해석(解釋)하기를 “임금의 지위가 한없이 높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왕업을 달성 못 한다”는 것이다. 정도전은 500년 전에 지금의 민주주의 사상을 설계한 것이다. 민주(民主)란 무엇인가? 민(民) 즉 국민(國民)이 주인(主人)이란 뜻이다. 조선왕조 500년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것은 서양(西洋) 왕들의 전제(專制)와 다르게 조선왕조는 항상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이 견제(牽制)를 통한 균형을 유지한 것이다. 이것은 정도전의 민본사상(民本 思想)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의 본관은 경북 봉화(奉化)이며 봉화(奉化) 정씨(鄭氏)이다. 아버지인 정운경(鄭云敬·1305∼66)은 형부 상서까지 지낸 청렴결백한 관료였지만 정도전이 역적으로 몰려 죽었기 때문에 기록이 부실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정도전의 묘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족보에는 경기도 광주(廣州) 사리현(士里峴)에 있다고 했고 김정호의 동국여지도(東國 輿地圖) 과천 현 조에는 과천 동쪽 18리에 있다고 되어 있으나 확실치가 않다고 한다. 정도전의 후손들은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이곳에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 부근 산하리(山下 里)에 3칸짜리 사당 문헌 사(文憲祠)가 세우고 가 무덤을 써 놓고 있다고 한다. 한우영의 〈정도전 사상의 연구〉에 의하면 정도전의 외가(外家)는 경북 영주(榮州)이며 외할아버지는 영주(榮州) 우씨(禹氏) 우연(禹淵)이다. 그러나 이방원파인 하륜(河崙)이 기록한 실록(實錄)에는 단양우씨(丹陽禹氏) 우연(禹延)으로 기록하여 정도전의 외할머니는 김 전(金戩)이라는 사람이 노비를 간통하여 낳은 딸이라고 기록하여 정도전의 외가 혈통을 비하(卑下)하고 있다. 정도전의 호(號)인 삼봉(三峰)은 단양 8경의 하나인 도담삼봉을 보고 지은 것이라 하는데 이것도 왜곡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정도전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독서를 좋아했다고 한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정몽주(鄭夢周)를 스승으로 두었다. 〈김용옥의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에 의하면 정도전의 민주주의 사상은 맹자의 귀민주의(貴 民主 義)를 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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