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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비를 외우는 나무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8991 등록일: 2013-05-20

비를 외우는 나무

海月 정선규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다. 보슬보슬 바람에 흩날려오다가 어느 시각부터인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창밖으로 보니 벚나무 잎이 엉덩이를 비비며 흔들리고 있는 것이 어떻게 생각하면 비가 중얼중얼 내린다 싶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는 쏭알쏭알 비를 외우는 나무의 모습 같기도 하다.

저 깨알 같이 내리는 비를 나뭇잎은 하나, , , 외우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글쎄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흔들리는 잎에서 옹알옹알 책 읽는 소리가 난다. 쉬지도 않고 온종일 내리다시피 하는 비를 하나도 빠짐없이 줄줄이 외워 꿰어나가는 소리에 참 감회가 새롭다. 내 감회대로 한다면 나무가 비에 다 들켰다고 할까? 잎의 비에 물렸다고 할까? 알알이 부서지는 소리에 매달리는 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비의 말에 나무가 쏟아지는 토를 달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어느 나라 방언이기에 이렇게 유창할까 참 세련되었네. 가만히 귀를 곧추세우면 신비감으로 불려 가는 아늑한 자연의 유세에 정말 온종일 비를 외우는 나무에 푹 빠져 쓰러질 듯하다는 말이지. 아주 이참에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가나 볼까? 아니! 이런 비가 우산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우산이 비를 읽는 것인지 귀가 따갑도록 푸닥거리에 몰매 맞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 우산에 비가 제 몸을 부 벼가는 상큼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글쎄 하늘에서 주어지는 비를 나타내주는 그 어떤 낱말이 들어 있지나 않을까? 두둑하게 거두어 낱말 사전이라도 만들어볼 양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한다. 나뭇잎에서 읽히는 비의 흐르는 말이라. 아니 시어에 묻어가는 말이 되고 총알을 빠르게 볶는 듯한 말은 시인의 성품으로 마음으로 들어가고 글의 양념이 되고 뼈대를 세우는 큰 수술이 되어 나온다. 내 기억에 언제부터 빗님이 나뭇잎을 흔들어 읽었던가? 비의 지식이 나뭇잎 끝에서 각 뜨는 속삭임을 품어내고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내색할 수 없는 싱그러움으로 뭐라 표현하지 못할 산란함은 선 분홍빛에 알을 깐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연못에서는 물고기 떼가 물 위로 뽀송뽀송한 머리에 모내기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일렁이는 물결에 정신이 하나도 없겠다. 나는 그래서 수제비 뜨는 연못이라 말할 때도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밀가루 반죽을 질게 해서 수저로 뚝 떠서는 젓가락으로 한 줌 한 줌 떨어뜨리곤 했었다. 내가 만든 수제비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셋이서 먹다가 한 사람이 살짝 화장실에 가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할 절경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초등학교 때 구구단을 외우던 그 시절 다른 아이들은 구구절절 구구단을 잘 외워 하교하건만 나와 그 친구는 늘 외우지 못해서 나머지 공부를 했다. 단둘이 호젓하게 교실에 남아 야무지게 구구단을 외우다가 창문을 열어놓고 언제 집에 가나 땅이 갈라지라고 한숨을 토하면서도 금방 화사하게 피어난 꽃처럼 생기를 발랄하게 되찾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칠판에 널브러진 닭똥을 싸지른 듯 이렇게 저렇게 지도를 닮은 낙서하다가 복도에서 교실로 걸어오시는 선생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여지없이 얼른 낙서를 분필 가루에 날려 보내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내 자리 네 자리 없이 국경 없는 걸상에 얌전하게 앉아 다소곳이 순종하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들킬까 봐 억지 춘향으로 똑똑 깻잎 따는 할머니의 빠른 손길에 이끌리듯 주저리주저리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나 보란 듯이 교실이 떠나갈 듯한 큰 목소리에 잔뜩 힘을 섞어 삼삼은 구 삼사십 이 푸닥거리하곤 했다. 그러면서 요리조리 선생님께서 언제 나가나 눈치를 살피다가 선생님께서 자리를 떠나시면 때는 요 때다 싶은 마음으로 들썩였다. 그런 나를 아는 듯 모르는 듯 그냥 내 팽 게 치듯 버려두시고 나가시면서 잘 외우고 있어. 이따가 와서 내가 꼭 검사할 거야.” 하시고 나가기 무섭게 이제는 내 세상이라는 듯이 교실이 무너져라. 뛰어다니며 이 책상 저 책상을 타고 다니며 지칠 때로 실컷 놀다가 그래도 선생님께서 안 돌아오시면 그래도 잔머리에는 밝아서 ! 선생님! 안 오신다. 우리만 떼어놓고 퇴근했다. ! 우리도 가자.” 친구를 잔뜩 부추길라치면 겁을 먹은 굳은 얼굴로 아니야. 내일 선생님께 혼나면 어떡해.” 그러면 아주 씩씩한 모습으로 한없이 젖어 그럼 우리 선생님께 편지 써놓고 가자. 그럼 괜찮을 거야.” 우리는 정신없이 아무 공책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에서 꺼내어 쭉 찍어서는 이렇게 썼다. “선생님! 기다리다가 안 오셔서 그냥 가요. 안녕히 계세요.” 입이 삐뚫어졌어도 말은 바른대로 했다고 편지가 아니라 이건 선생님께 일방적으로 우리 간다는 통보 장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보란 듯이 반복했을까? 이제는 간이 커질 대로 커지는 재미에 들려 선생님께서 무서울 것도 눈치 볼 것도 없이 나머지 공부하다가 가고 싶으면 딸랑 편지 한 장으로 대신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건 정말 신 나는 일이었다. 교실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떠들고 뛰어다니고 걸상을 넘어뜨리고 둘이 숨바꼭질을 하고 교실은 정말 언제 청소를 했는가 싶게 다시 어질러지고 이건 마냥 내 세상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한때라고 했던가? 이런 장난이 아마 한 달은 갔을까?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마냥 흥만 돋우고 계시던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정선규 앞으로는 꼭 검사받고 가라.” 하시면 손바닥을 때리셨다. 그런데 말이야. 참으로 불공평하게 선생님은 나한테만 꾸중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시시 입술을 깨물고 웃는다. 세월만 붙잡을 수만 있다면 언제나 그 시절에서 살고 싶을 정도로 마냥 변선이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그리워지는 한 날이다. 그나저나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쳤다. 그렇게 외우지 않아도 될 비를 구구단 삼아 열심히 외우고 있던 나무도 조용했다. 절로 아까 내리던 콩 볶는 듯한 귀에 익은 빗소리가 내 귓전에 메아리친다. 나뭇잎 읽은 소리에 비 읽는 낭만의 소리가 참으로 똘똘하게 다시 들릴락 말락 내 마음의 반죽을 쑨다. 그리고 보니 내 조카들이 떠오른다. 큰 조카 명희와 작은 조카 지철이가. 녀석들 벌써 시집가고 장가가서 잘 살겠다 싶다. 나하고 11년 차이가 나니까 벌써 큰 조카 명희는 33살이겠다. 참 우습다. 그렇게 나를 쫓아다니며 지긋지긋하다 못해 아주 귀가 짓무를 정도로 못살게 굴었다. 학교만 갔다 오면 황성 공원이라도 같이 산책하러 나가면 외삼촌 외숙모는 진짜 외숙모가 있으면 좋겠다.”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녀석이 이제는 다 커서 외숙모 없는 외삼촌을 넘어 가정을 꾸리고 잘 살 것을 생각하고 있자니 ! 글쎄 마음이 뿌듯하다고 할지. 그저 아직도 어리기만 하다고 할지. 이런 감정을 감회라고 하나. 어떻든지 지금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기특하고 고마운 조카가 아닌가? 그깟 산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도 못 들어주고. 하하하 웃으며 아직도 어린 것 같은 다 큰 조카들을 추억으로만 읽는다. 아마 꽤 오래됐지. 부산에 있는 고려신학교인지 고려신학대학교인지 언어선교학과에 들어가 워낙 불교 집안인 매형을 구박을 받으며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 그 후로 연락이 끊어져 알 수가 없다. 매형은 그래서 나를 원망했다. 내가 경주에서 직장생활 하면서 잠자리에서 늘 성경이야기를 해주었고 교회 이야기를 해주었던 영향으로 명희가 그렇게 됐다는 이유이리라.” “아참! 내 정신 좀 봐라. 내가 미쳤지. 비를 외우는 나무에 언제 내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는지 허 참! 나도 나를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 미친다는 것이 쉽던가? 수제비 뜨는 연못에 나무가 비를 외우며 살아가는 삶에 그렇게그렇게 다 시어가 되고 시상이 되어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걸 보면 모르긴 몰라도 다행히도 내게 손해가 되는 짓은 아닌가보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막걸리 한 잔에 시 한편 창밖으로 내어보냈으면 하는 뒷맛에 술맛이 되살아난다. 남들은 술에 담배에 여자에 풍류를 즐기는 멋에 빠져 글을 쓴다고 하더니만 아예 생각을 말아야지. 그저 뒷 끝만 아리다. 요즘 시인들은 나만 보면 위우는 말이 있다. ”정시인? 자네 담배 안 피우나? 술도 안 마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정말 자기들 상식 밖이라는 듯이 놀랍다며 말한다. 글쎄 술을 안 마시는 것일까? 안 못 마시는 것일까? 담배 역시도 안 피우는 것일까? 아니면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글쟁이가 술, 담배, 여자, 풍류를 즐기지 못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 문학계의 일반적인 외움인데. 글을 쓰다보면 하루에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담배에 술에 젖는다는데 그 왜 그럴까? 마음에서 구상한대로 잘 써지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렇지 만도 못하다 보니 하루에 수 십 번 씩 고뇌하고 번민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담배에 손을 대고 술에 손이 가고 여자에게 생각이 가기 때문이리라. 아예! 이제 세상을 너무 잘 읽어 보문산에 돗자리 깔아놓고 앉아 있어도 되겠다. 그래서 시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통찰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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