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마흔넷이라는 삶에서 내 삶을 뒤돌아보면 그동안 스치고 비켜간 인연들이 새록새록 향처럼 추억을 퍼 올린다. 정말 어느 때에는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다 봉변을 당할 뻔하기도 하고 욕이 왔다갔다하며 여차하면 정말 찌를 듯한 술자리에서 사고를 막기 위해 한가운데 끼어들어 은근히 진땀이 흥건히 배어나던 날들 그래도 그중에 군북면에서 추부중학교로 유학을 왔던 사람들이 내 추억에 생각의 면류관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5남매의 생각이 유별나게 많이 떠오른다. 그 먹고살기 힘들고 어려운 농촌에서 5남매를 낳고 뼈가 빠지게 자식들 가르친다고 추부중학교를 보냈는데 자식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 다 보니 한 살, 두 살 터울에 금방금방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졸래졸래 중학교를 입학하니 방을 얻어도 남들처럼 작은 방을 얻어서 비좁은 방 안에 올망졸망 돼지들처럼 놔둘 수도 없는지라 어떻게 주변에 값이 싸고 넓은 마당에 텃밭까지 달린 독채를 얻어 장남부터 차남 장녀 셋째까지 함께 자취를 시켰는데 이게 문제였다. 집 안에 어른은 없고 중, 고등학생들만 있으니 제 친구라는 친구는 다 데리고 와서 밤새도록 담배피우고 떠들고 술 마시고 이것도 모자라 여자 친구들까지 데리고 와서 고스톱에 카드를 치며 잘 놀다가도 내가 먹었네! 네가 먹었네! 욕설이 왔다갔다하고 자전거에 오토바이까지 동원되어 담배, 술 사러 왔다 갔다를 낮 밤이 없이 하니 동네 어르신들이 손수 찾아오셔서 “학생들 조용히 좀 해. 우리가 시끄러워서 도저히 한잠도 못 자겠어.” 어제도 못 자고 그제도 못 자고 졸려서 일을 못하겠다고. 이젠 떠들지 마. 알았지. 놀아도 남에게 피해 안 가게 조용히 놀아야지.” 정말 안으면 터질까. 안으면 깨질까. 그렇게 얼리어 보고 달래어 봐도 이건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모른다. 대답만 큰소리로 “예”하고는 여전했다. 얼마나 밤이고 낮이고 담배 사러 술 사러 왔다갔다하는지 그놈의 오토바이 소리에 자전거 타고 고함 지르며 동네 한가운데를 남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다니니. 급기야는 일이 커져서 동네에서 어르신들이 보광리 집으로 전화해서 애들이 너무 떠들고 술 마시고 담배피우고 하니 차라리 독채를 빼고 작은 자취방으로 옮겨 주는 것이 어떻겠냐? 언제까지 아이들만 놓아둘 것이냐. 다른 동네로 아이들 자취방을 옮겨라. 노래를 부르고 또 매달 5일마다 서는 장날이면 후배 아버지가 장에 오시는데 그때 잠깐 자췻집을 들러 가거나 혹은 장에서 어르신들이 볼 때마다 아이들 문제로 말이 많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이 차일피일 세월만 가고 참다못한 동네에서는 지서에 신고했고 그때마다 경찰관들이 왔었으나 단순히 동네에서 시끄럽게 한다고 해서 처벌할 수 있는 형사 사건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문제로만 제기한 채 경찰관도 단순히 떠들지 말고 놀라며 타이르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후배가 찾아왔다. “형 애들 안 되겠어. 동네에서 어른들이 밤낮으로 죽겠대. 특히 그놈의 오토바이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시겠대. 온 동네 개들이 다 짖고 난리야. 형! 어떻게 생각해 애들 가만 놔두면 안 되겠지. 손 좀 봐 줘야 하는 것 아니야. 우리 아버지도 난리야 나한테 선배가 되어서 후배들 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느냐고. 형! 나하고 같이 가요. 응!”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후배는 그렇게 몇 번을 왔다가 뒷걸음질쳐 가곤 했는데 그만큼 또 나를 찾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제발! 좋게 넘어가기를 바랐는데 일이 자꾸만 꼬여가만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애들을 때려라. 말아라. 참아라. 내가 개입할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개입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닌 것을. 그리고 보면 후배도 이상한 녀석이었다. 내 동네 문제도 아니고 내가 책임질 문제는 더더욱 아니건만 어허! 나한테 와서 애들을 때리게 해달라고 허락해달라고 하지를 않나.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따지지를 않나. 정말 나도 답답했다. 점점 상황은 나빠져만 갔고 나는 후배의 독촉을 매일 받아야만 했다. 참 별 이상한 삼각관계도 다 있네 싶어 허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데 고민은 더 충만해져 갔다. 그렇다고 후배들 문제임이 틀림없는 것을 어찌한담 그래 가서 때려 단 나는 모르는 일이다. 처결할 수도 없고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 때리게 허락해달라는 녀석은 또 얼마나 마음이 오죽이나 아플까? 싶기도 하고 무조건 일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지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는 저희끼리 무슨 일을 어떻게 저지를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고민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 어차피 해결될 일이고 가만히 있는 다고 될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네어르신네들이 그들을 동네에서 쫓아내게 해서도 안 되겠다. 정말 서로 못할 노릇이구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날도 후배는 우리 집으로 출근했다. “형 어떻게 해요. 내가 생각해봐도 더는 못 참겠어요. 어르신들이 이제는 저한테 나무라잖아요. 같이 가요.” 그래서 나는 내가 같이 가는 조건으로 절대 애들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동행했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가니까 지금 저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면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뛰어다니고 술 마시고 떠들고 싸우고 고성과 함성으로 떠들썩했다. 참 내가 봐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았다. 후배가 애들을 마당 한가운데로 집결시켰다. 그런 후에 훈계를 시작했다. “야! 너희 지금 정신 있어 없어. 동네 사람들이 잠을 못 잔대 마. 어두운 밤에 불도 안 들어오는 자전거를 타고 앞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것을 보고 혹여 노인네, 어린아이들이 치일까 봐 겁이 난대 마. 특히 오토바이 밤에는 타지 말고 낮에만 타고 다니는 바람에 온 동네 개들이 다 짖고 아주 시끄러워 죽겠어. 왜 그렇게 빨리 달려 뭐가 급하다고. 그러다 동네 아이들이나 노인네 치면 어떡할 거야? 너희가 책임질 거야?” 얼마 동안 그렇게 조용히 넘어간다 했더니 감정이 격해진 후배가 더는 못 참겠는지 느닷없이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짝! 짝! 볼 따귀를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백제의 계백장군이 머리에 떠올랐다. 신라와의 황산벌싸움을 앞두고 처, 자식을 다 죽이고 나갔다고 했지. 그래 나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내 온 힘을 팔에 실어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영빈이를 향해 손을 날렸다. 순간 짝 하는 소리가 번개 쳤다. 영빈이는 내 손을 피하지 못한 채 그대로 맞은 채 볼이 아주 빨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사람을 때리다니 나는 선배들한테 맞고 자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또 후배들을 때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사람이 확 돌아가버렸다. 보는 사람들이 놀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영빈이가 남에게 맞는 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영빈이가 나한테 맞은 후부터 아침, 점심, 저녁을 걸렀다는 것이다. 나는 모른 척 지나쳤다. 그런데 그 이튿날에도 여전히 전날과 같이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나는 이러다가 생사람 잡겠다 싶어 마음을 돌이켰다. 영빈이가 울고 있는 장독대로 가 영빈이를 일으켰다. “영빈아! 형한테 맞은 게 그렇게 서러워.” 하고 위로를 했다. 그리고 살짝 안아 주었다. 녀석이 원망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웃는다. 나중에 영빈이한테 들은 이야기이지만 형은 사람을 안 때리는 사람인데 왜 나만 때렸는가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 맞았으면 이렇게는 서러워 울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누구든지 다 같은 말을 한다. 나는 술도 안 마시고 사람 때릴 줄도 모르고 화낼 줄도 모르며 그냥 좋은 형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날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때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맞고 보니 그렇게 서럽더라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그때 알았다. 사람의 바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늘 다정다감하기만 하여 제 말이라면 다 들어주고 좋은 말만 해주고 이해하는 사람으로 후배들한테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내 복인지 화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 좋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냥 방종하고 방관하는 것일까? 내 삶의 목적이 이런 것일까? 방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애들을 다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아무튼, 영빈이는 그 후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집을 떠났던 엄마를 인천에서 찾아서 여자 친구와 함께 살기로 했다며 좋은 모습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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