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나라
海月 정 선규
사람이란 하나의 우주와 같은 것으로서 땅과 같은 육체와 하늘과 같이 육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그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면 모든 나라가 움직이듯 하나의 땅덩어리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참으로 오묘한 형체로 만들어져 있다. 한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면 두 사람을 얻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정말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을 따라 산책을 나서듯 하나의 나라 즉 정부를 이 땅에 세울 수 있는 능력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이 세상에 참으로 매우 다양한 존재의 가치를 가지고 산다.
졸리면 자고 싶고 먹으면 먹고 싶어 먹어야만 살고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나 개인의 약점일 수도 있고 아픔과 상처가 될 수 있는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넘나들며 이 세상 나그넷길에 소풍 온 듯 그저 그렇게 삶의 과정을 밟아 간다. 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체험인데 내가 살아온 날들은 미약하지만, 현재 너무나 나를 괴롭히는 일이 있곤 한다. 왜일까? 내 주변에는 정말, 정말로 밥은 안 먹고 살아도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 해서라도 생빚을 내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목숨 아니 영혼까지도 팔아가면서 마시는 사람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술에 약한 것이면서도 삶에서 드러나는 그 개인의 삶의 구성적인 약한 부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집에서 친구를 만나든지 거리에서 만나든지 심지어 화장실 다니러 가다 만나더라도 꼭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오늘 기분도 안 좋은데 한잔 할까? 혹은 집에 마누라도 없는데 술이나 한잔 하면서 모처럼 기분이나 내볼까? 이것도 아니라면 오늘 재수 더럽게 없네. 투덜거리면서 우리 소주나 한잔할까? 말한다. 참 술이란 좋겠다. 왜냐하면, 평생 사람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나쁘면 나빠서 재수 없으면 재수 없어서 참말로 어이없게도 장단만 맞추어주면 되니까 말이다. 말하자면 술은 어쩌면 한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한다.
아마 세상에 이만한 일상의 권력, 생활의 권력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간혹 이런 말을 한다. 왜, 도대체, 세상에 술 공장 테러는 없는 것이야 하고 말이다.
요즘 솔직히 말해서 친구든 아는 사람이든 누구든지 만난다는 것이 그렇게 달갑지만 않다.
술을 마셔도 분별력이 있을 정도로 마셔야 글을 쓸 수 있고 온전한 마음의 평정으로 글을 써야하며 차분하고 솔직하게 써야하는데 도를 넘으면 마음에 평정도 모든 분별력도 알코올의 작용을 받아 극도로 올라가는 바람에 글이 나와도 극단적으로 나오거나 편파적이거나 아무 소재도 아닌 것으로 글을 쓰게 된다. 말하자면 술이란 내게는 적과 같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람이 주머니에 돈 천 원만 있어도 가만히 집에 앉아 있는 사람한테 시장가느라 거리에서 우연히 부딪히노라면 첫 말부터 끝말까지 아주 술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절대 가기를 기피한다.
사줄 형편도 안 되는데 괜히 술 한 잔 얻어먹자고 따라나섰다가 나중에 들려오는 말에 누가 그러는데 너는 얻어먹을 줄만 알지 남한테 사줄 줄은 모른다면서 하는 뒷담화 듣기 일쑤이다. 그런가하면 나만 봤다하면 언제 술 한 잔 사지하고 은근히 부담을 준다.
솔직히 나는 남한테 안 좋은 소리 듣는 것도 싫고 마지못해 따라가서 술 술술 잘 넘어가지도 않는 부담스런 자리에 전혀 나서고 싶지 않건만 또 이건 내 생각, 내 사정이고 왜 그렇게 고집은 센지 따라나설 때까지 내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깨소금을 볶는다.
참 문제도 이런 문제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아주 병적이면서도 남을 괴롭게 하는 단골 메뉴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나는 돈 천 원이면 P. C 방에 가서 글을 쓰고 원고를 정리하고 블로그 관리를 하며 카페에 글 올리느라 원고 보내느라 책 내느라 온통 정신이 다 나가는데 아니 글쎄 이런 사람한테 술을 마시자고 떠밀더니 이제는 아주 대놓고 술 사달라고 조르고 협박하면서 언제 그런 날이 있겠느냐는 둥 네가 술 한 잔 사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둥 별의 별말을 다 한다. 약한 것이 강하다고 그래 짖어라. 짖어라. 나는 못 들었노라. 너를 만난 적도 없노라.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제는 능구렁이가 다 되어 전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내 꿈을 향해 귀 막고 입 막고 눈 막고 눈치, 코치 생각 없는 사람처럼 앞만 보고 가는 것이다. 시종일관 무시하며 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그 사람들이 나를 다시 본다. 아니, 술 안 먹는 사람, 마셔도 정도껏 마시는 사람, 마셔도 제 할 일 다 해놓고 마시며 즐기는 사람, 꿈을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 이렇게 말들이 달라진다.
과연 약한 것이 강한 것이다. 내 약함을 알고 남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묵묵히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참고 견디다 보면 이게 먼 뒷날에 강한 나로 거듭나는 좋은 결과를 낳는다. 처음에는 약한 것 같았으나 내가 꿈을 다 이루고 났을 때에 얼마나 강한 빛으로 튀어나올지 또 그들의 입에서 스스로 역시 하는 감동이 나올 것이다. 이것이 삶의 극복이고 내가 잘 됨으로써 그들에게 빚진 빚을 한꺼번에 아주 멋들어지게 갚아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성공하면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까지도 좋은 삶의 영향을 끼치고 삶의 반전 속에서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내가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능력이 되어주며 그렇게 살아갈 장래의 일이 오지 않겠는가 말이다. 심을 때에는 막걸리 한 잔으로 심었어도 먼 훗날 더 큰 것으로 더 많은 것으로 투자한 만큼 되돌려 받을 수 있다면 긴 안목과 혜안으로 판단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윤택함이 어디 있을까? 정말이지 얼마나 윤택한지 참기름으로 나무 바닥을 닦아 놓은 듯 빛나고 빛나며 미끄러져 서로 넘어지고 잡아주는 더불어 사는 이웃으로 거듭나리라. 무엇이든 오늘 보리를 심어놓고 내일 당장 곡식을 거두려한다면 결국, 그 보리농사는 하나의 헛수로 끝나고 말 것이며 더 이상 그 밭에서는 꾸준히 보리가 익어가지 못할 것이다.
기업이 있어야 일자리가 있고 사람이 있어야 기업이 있는 것처럼 삶의 지혜는 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서 있다. 한 사람의 관계 속에서 오늘을 보고 심지 말고 그 후 십년, 이십년을 놓고 기다리며 더 좋은 것으로 받을 준비 가운데 살아가는 면모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