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야!
도심의 변두리 마을 동구 나무 아래에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이름 모를 긴 머리 소녀가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다
겉보기에는 단아하면서도 아담해 보이지만
불현듯 바람이 불까 싶으면
어느덧 소녀는 낯선 여인으로의 변신을 하며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엄마 내가 그런 것이 아니야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나도 힘들단 말이야.
정말 힘들단 말이야."
뭘까?
이것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수렁에 빠진 내 딸 아니 내 여동생
아무튼 지금 소녀에게 엄마가 필요해 보인다
"아가. 아가 내 아가 왜 그러니
세상에서 엄마는 네 편이란다
어서 무엇이든 다 말해 보렴
아가! 아가! 내 아가."
내 앞에 환상처럼 소녀의 엄마가 나타난다
하지만
소녀는 달랐다
지금 소녀는 엄마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 달라며 애원한다
두 모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내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일까
나는 더는 소녀를 바라볼 수 없었다.
소녀의 몸부림은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다
아니 거의 미쳐만 갔다
"엄마 나 좀 봐"
제발 내 말 좀 들어봐"
이건 주관적인 내 생각이지만
아마 소녀는 자금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세상에서 가장 소녀를 사랑하는 엄마에게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에서 혼자 엄마를 향한
절규에 몸부림을 저토록 치고 있다니
엄마는 지금 억울한 처지에 빠진 딸의 사정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믿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한다
무슨 일일까?
왜 그럴까?
소녀는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아니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또 나는 소녀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가?
그래 딸을 세상 어려움 가운데에서
모른 척 외면할 엄마가 어디 있단 말인가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그 사정이 있거나
혼란스럽겠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마음으로만 딸을 응원하며 잘 견디기만을 기도하고 있겠지.
나는 소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한다
"인제 그만 엄마도 네 마음 알 거야
그래 네 엄마도 지금 널 생각하며 힘들게 잘 견디고 있을 거야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엄마는 지금 널 도와주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실 거야
얘야! 지금은 견디는 수밖에 없구나
이제부터 너는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 견뎌야 하고 견디기 위해 참아야 하는
너 자신과 싸워야 하겠지
너 자신을 치는 연습을 해야겠지
그래서 먼 훗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세상 위에 있어야 한다."
나는 나도 모를 소리를 하며 소녀를 보듬고 있었다
그리고 보면 요즘 우리는 어려운 경제현실 속에서
많은 아픔을 가슴에 담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노파심이 이는 것은
이러다 정말 이러다
마음에 쌓인 절망의 아픔을 어느 한순간 절박함을 느끼고
더는 참을 수 없어 터질듯이 터질듯이 광야를 향해 절규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지 않을까 미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을 가지면서 반드시 소녀는 어두운 과거를 이기고
서서히 밝은 미래로 자유롭게 옮겨 가리라 .
가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