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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삐걱삐걱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1323 등록일: 2010-10-10
삐걱삐걱 海 月 정선규

삐걱삐걱 초인종이 울린다
가깝고도 멀리 들어갈까 말까
아들의 잠 깨울까 봐 망설이는
아버지 마음이 주인으로 여닫는
진한 그리움의 향이 피워진다

아버지가 그립다
늘 날 업고 바닷가를 거닐어 가시면
발자국들이 바람불어 양옆에서
삐걱삐걱 손뼉 치며 사랑의 대문 안으로
나를 불러들였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아버지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난다
내버려뒀던 조각들이 뗏목 타고
내 마음으로 흘러들어와 안긴 채
꼭꼭 틀어박혀 기억을 더듬는다

마루 끝이 삐걱삐걱 울리는 것이 꼭 떨어져
달아나 버릴 것 같은 아스라한 가슴 되고
달빛으로 질퍽한 우리 집 마당이
아버지 몸무게로 푹 패인 개미 절벽 같은
사랑의 희극이 되고 있다

잠 못 드는 밤
목젖을 타고 유난히 들려내리는
짙은 능선 아래 그림자 따라나서는 그리움은
달빛 아래 물씬 세수한 얼굴 가지고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 유람선에 몸 실은 아버지

아들이 배웅하며 서 있는
뚝섬을 지긋한 눈길로 염두에 두시며
긴 여행을 떠나가시면서 묵묵히 태워내시는
담배연기가 아련함을 하햫게 풀어내는
날개로 피어오르고 있다

서울은 한강에 업혔고
난 아버지 등에 업혔다
문풍지가 부르르 떤다
아버지사랑의 감흥에 젖어 어찌할 줄
모르는 초인종이 삐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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