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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묵상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2059 등록일: 2012-12-09
묵상
海月 정선규

여보세요
여기 2병동인데요
204호 오늘 새로들어오신 분
이불이 없네요
이불 하나 내려보내주세요
이상하다
내가 이정도였단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이상한 병증이 생겼다
그렇게 유연하게 열리던 말문이
발음이 잘 안 된다
이불 하나 내려 ~~
내려 ~~
순간 벼락을 맞은 듯
말이 꼬이며 끊어지고 만다
쉼표의 내색일까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히히 히발음에 지쳤을까
말문은 막히고 말은 더듬는다
옆에 있는 형님이 담배 한 개피 달라는 말에
지금은 없고 이따가 들어오면 드릴게요
또 이따가 가가가 ~~
뭘 훔쳐먹다 들켜버린 듯하다
슬럼픔라 이르리오리까
속에서 화는 치밀어오르고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 그. 그. 그건 ~~ 건건건 ~~
턱걸이를 하고 있다
혼자 있을 때면
싸래기 맞은 뭐처럼
누구를 향한 말인지
병신 ~
병신~
미친녀석 ~
미친녀석 ~
습관처럼 굳어졌다
선배라서 참고
후배라서 견디고
나이 먹었다고 봐주고
막내라고 못 들은 척하고
끝내 그렇게 그렇게
문인이라서 휘돌아간다
먼 빗속을 아련히 헤매이며
쏘다니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스트레스를 들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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