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海月 정선규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과수원에서 일하셨는데
가끔 그 과수원을 들러 사과꽃 향기를 맡으며 놀다
어느 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엄마 냄새라도 맡은 양
사르르 녹는 눈깔사탕처럼 잠에 취해 온 종일 단잠을 자곤 했다
일어나면 얼마나 몸도 마음도 개운하고 말끔하던지
새로운 세계에서 어렴풋이 깨어나는 이상야릇한 기분이
되기도 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딘지 모르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밖으로 빠져나온 듯한 새로운 쾌감을 놓는 순간이었지 싶었다
현실을 돌아 잠을 가르고 꿈을 꾸었다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은
어린 나이에 마냥 즐거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모르고 펄쩍펄쩍 뛰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빼앗겨버린 장난감 같은
허전한 체험이었던 것 같다
사과 밭에서의 잠이라 그럴까?
꿈속에서도 아버지는 사과를 여전히 한 광주리 따고 계셨고
나는 떨어진 사과를 줍고 있었다
그중에는 상처 하나 없이 잘 생긴 빨간 사과도 있었는데
손으로 문지르면 뽀드득뽀드득 살가운 소리를 내며
얼굴을 바람에 씻은 듯 말끔해지는 것이 더 싱그럽게 잘 익은 것처럼
빨개지고 나면 인정사정없이 입으로 꽉 깨물어 흔들어 주고 싶게
단물이 달콤하겠다 싶으면서도 그 모습이 앙증스러웠다
오늘내일 조금씩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를 바라보면서
"바람이 흔들었을까? 또 빨갛게 번졌네"
생각하고 어느 날인가 죄 없는 사과나무를 잡고 흔들려다
작은 키가 방해되자
폴짝폴짝 뛰어올라 여린 사과나무 가지 잡으려다 지쳤다 싶을 때
잠에서 깨곤 했다
요즘은 사과를 보고 있으면 예전에 옆집에 살던 누나가 생각난다
민 얼굴일 때면 두 볼에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금방 피가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생각에 불안하기만 했다
요즘 그때를 생각하면 왜 그런지 나에게 사과는 한쪽은 터질듯한
절정 된 시간으로 밀착한 채 응집된 단물을 바라보게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꽉 깨물었을 때 시원하게 입안으로 고여 들어 엮이는
교차 감으로 긴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