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아침 햇살은 해맑게 개인 표정을 지어 이제 막 팔각정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그는 소주 한 병에 야쿠르트와 빵을 안주 삼아 마시고 있었다 외롭다. 못 해 쓸쓸한 삶에 떨어져 나간 왼쪽 가슴을 보는듯했다 그는 어쩌면 이미 삶에서 정당한 균형을 잃고 기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햇살은 팔각정에 내려와 어느새 따사로운 걸레질 하며 다복한 인상에 소박하고도 멋스러운 풍채를 드러냈다 "아저씨" 그는 팔각정 앞을 지나가는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가던 길을 접고 그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얼핏 보기에도 초췌하고 핼쑥한 얼굴에 햇살이 스며드는 것이 누군가 그의 얼굴을 따뜻한 정으로 보듬어 퍼뜨려 올라가는 포근한 상상이 각인되었다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슨 이야기를 주워들을 수 있을까? 오늘 어떤 소재의 글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그에 대하여 이미 많은 생각으로 차 오르기 시작했고 팔각정으로 다가갔고 그는 쫓기듯이 말했다 "아저씨 여기 앉아 한잔하세요."
나는 그의 앞자리에 앉았고 그는 얼른 야쿠르트 한 개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거기에 소주를 따러 내게 주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긋이 마시면서 꼭 무슨 말을 할 것 같은 그의 입술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술에 얼큰해진 그는 입을 열었다 "아저씨를 보니 인력 사무실에 일 나갔다 못 나가고 그냥 들어오시는 것 같은데요. 나도 오늘 일 나갔다 그냥 들어왔습니다. 한 달에 20일은 일하는데 어쩌다 보니 오늘은 좀 늦게 사무실에 나갔더니 늦었다고 그러는 것인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다 내 보내주고 나는 안 내보내 주더라고요 매우 허탈한 심정에 한잔하고 있습니다" 나는 물었다 "아저씨 요즘 일거리는 어떻게 많은가요?" 그는 술잔을 들며 말했다 "아니요. 없어요. 특히 대전은 유독 심해서 더 일거리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아는 사람은 당진으로 내려갔는데 당진 서산 그쪽으로 일거리가 많답니다 어제도 전화했더니 회식한다고 하더라고요 대전은 정말 일거리도 없지만 사람이 뭘 해먹고 살 게 없으니 참, 사람 살 곳이 못 됩니다." 그랬다 우리가 모두 당하는 일이라는 공감대를 이루며 나는 왠지 그의 가정이 걱정스럽게 떠올랐다 그에게 살짝 물었다 "아저씨 가정은 있습니까?" 그는 고개를 돌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말했다 "가정은 없어요 그러니까 살지 가정 가지고 이렇게 못 살지요" 하더니 이내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의 말은 이랬다 젊은 시절 대전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기름 밥을 먹었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면서 시외버스 안내양과 눈이 맞아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살던 어느 날 그녀는 이제 갓 돌을 지낸 아들을 재워놓고 밖으로 나와 그를 기다리다 집 앞을 지나던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는 그녀의 가슴을 지나 훌쩍 넘어갔고 그는 아내를 살리고자 병원 측에 제발 살려달라 애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하게도 살려봐야 식물인간일 뿐이라는 대답에 끝내 보내야만 했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30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중매와 만남의 인연이 있었으나 아내를 너무 사랑했기에 연애 한번 안 해보고 살았다고 했다 비둘기같이 순결한 사랑이 푸드덕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순수한 사랑이 눈부신 환상으로 내 눈앞에서 본 떠오르고 잠시 말이 없던 그는 눈물을 훔치며 하늘을 우러러보며 다시 운을 띄웠다 그 후 아들은 누나한테 맡겨 그 집 호적에 올려 키웠는데 매우 고맙게 잘 자라서 건양대학교병원 의사로 재직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그는 아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네 아버지다. 그동안 잘 커 줘서 정말 고맙다. 어서 오너라. 사랑하는 내 아들아!" 느흐끼는 눈물로 받아들이고 싶은데. 누나가 말린다고 했다 아니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인제 와서 잘살고 있는 애한테 사실을 말하면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아들에게 많은 혼란과 지금까지 고모를 어머니로 고모부를 아버지로 부르며 살아왔는데 인제 와서 그런 아픔을 애한테 안겨줄 수는 없다며 오히려 그를 설득시키면서 제발 무덤까지 가지고 가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 누나네 집에 들어가 함께 살고 있는데 이것도 아들이 "삼촌삼촌 혼자 쪽방으로 떠돌지 말고 우리 집에 와서 살아" 날마다 집으로 쫓아와 며칠 밤을 삼촌 곁을 떠나지 않고 보챘다고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지붕 아래 함께 살면서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이라 말하지 못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삼촌이라 알아주며 살아가야 할 날들이 너무 원망스럽고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에 눈물을 쏟는다 핏줄은 당긴다고 아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삼촌 이상해요. 삼촌만 보면 그냥 좋아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끌려요." 모르게 좋은 사람으로만 더 각인되어 가고 있음에 또 눈물을 보인다 아들까지 모두 조카가 셋인데 유난히 아들이 자신을 따른다고 했다 이런 아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는 순간적으로 아들을 껴안고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네 아버지다. 어서 오너라" 흐느끼며 말하고 싶어도 냉정한 현실 앞에 그리고 누나 앞에서 인생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거듭하며 매우 힘든 여정을 걷는다 어디 이뿐인가 이웃에 사는 사람들도 두 사람을 보면서 "이 집 아들은 엄마 아버지보다 삼촌을 매우 빼닮았어." 하고 쉽게 말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 미치도록 고민으로 하며 벙어리 냉가슴 앓아 늙어가고 있다 "동생, 동생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하는 물음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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