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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새 나루 선장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2262 등록일: 2012-05-06

새 나루 선장
 海月 정선규

오후 3시가 되는 나루터에
넘실넘실 하늘로 들릴 듯 뱃길이 열린다
다들, 다들, 어디를 여리게 가시나
세상에서 오라는 곳은 없어도
알아차리고 갈 곳은 많다네
내 인생에 남은 것이라고는
배꼽시계 자지러지게 울리는
낡은 배 한 척인지라
김치, 깍두기, 콩나물, 시금치, 고등어
들어온다기에 시 금 털털한 쭉정이
흩날리는 홀아비 향기 달래도 보고
내 등 뒤에 돌아갈 집 없는 내 이웃사촌 만나
뽀드득뽀드득 게걸스럽게 부서져 내리는
쌀집에 배 채우는 선장으로 간다네

어이! 김씨! 여기 앉아
그런데 오씨가 안 보이네
참! 이상하다
다 된 저녁 시간에 어디를 갔을까
혹여 없는 자가 가위에 눌린 것은 아닐지
파릇파릇 돋는 궁금증에도 집도 절도 없어
전화는 안 돼 무거운 침묵만 온몸을 짓누르고
무심결에 뒤척이는 발 도장만 어지러이 벌여 놓은 채
새록새록 숨죽여 들어오는 씨름만 번질난 것이
정말 농토를 일구며 살아갈 집 한 채 주지 않는
게걸스러운 삶에서 오젓으로 삭히는 비상구를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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