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쟁
海月 정선규
지금 이 땅에는 자연의 법칙이 권력으로 탄생한다.
하늘은 비를 내리고 사람들은 봄비라, 단비라
목이 마르듯 분주하게 일상으로 조각한다
대지 위로 소록소록 머리 뻗어 새싹이 올라오면
이제 완연한 봄이라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이러한 북새통을 치르며 사람이 알 수 없는
지하세계에서 벗어나오는 모습은 마치 튀긴 고등어를 먹다 가시만 발라내듯
어쩌면 그렇게 봄기운을 잘 타고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쏙 빠져나와 빈틈없이
따뜻한 양지마다 군락으로 지펴 살아가는 촌을 만들어 옮기는 모습이 기가 막히다
글쎄 누가 이 봄을 이토록 사계절의 틈바귀 속에서 고귀한 생명으로
이목꼬비가 뚜렷하게 발라내는 것일까?
목척교를 건너다보니 대전을 내려다보니 어느덧 계절은
추웠던 겨울 속에서 화사하게 발라낸 봄을 완연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둑을 따라 거닐어가는 가로수는 불 켜놓은 형광등처럼 화사하게 떠 일어나고
그 아래 둔 턱에는 이름 모를 풀이 땅속에서 호떡 굽다가 불이 났는지
앞을 다투어 촉촉한 대지에 아낌없이 아름드리 융단을 진하게 싸질러놓고
스치는 봄바람을 짧은 녹음에 촉촉한 대지를 섞어 머리를 들어
휘휘 젖어가고 있었다
엊그제만 해도 함빡 입을 벌리지 못한 벚꽃은 한 송이의 반같이 피어
어딘지 모르게 반은 토라진 듯싶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간질간질 긁어내는
감 질병으로 다가와서는 나 스스로 내 마음을 닦달하며 괴롭혔다
흔히들 사랑이 뭐기에 하는데 이럴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봄은 뭐기에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봄에 너무 집착한 탓일까?
저기 구두 닦는 아저씨 손길은 왜 그렇게 투박하게 보이는지
그만 감 질이 나고 만다.
내 생각 같아서는 그냥 아저씨 손에 들려 있는 구두를 빼앗아 보기에도
속 시원하게 훌훌 구두를 닦았으면 좋으련만 남의 일을 나 속 시원하자고
무례하게 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으로 모든 세상 일이 내 뜻대로 안 된다
내일은 그동안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보문산을 가야겠다
흐드러진 벚꽃이 생생한 산책로를 거쳐 사정공원으로 넘어가는 길에
내 코끝으로 꽃향기를 밝히는가
꽃향기가 내 코끝을 밝히는가
코 하나 사이에 서로 밀고 당기는 신선한 감촉을 쐬어야겠다
그리고 잠시 산책로에서 벗어나 작년 여름 개미들의 줄기찬 서행으로
길이 막혔던 오솔길 옆 작은 도토리나무를 찾아가 안부를 물어야겠다
햇살을 등지고 늙은이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등이나 긁으렴. 햇살을 꼬드겨 놓고
나는 있을지 없을지 모를 쑥이니 뜯을 생각에 마음은 설렌다
하기야 말이 쑥 뜯겠다 싶은 것이지
괜히 새싹이 나오는 남의 대문 앞에 청승맞게 앉아서 애꿎은 먼 하늘만
구걸하듯 바라볼 것이다
그럼 빠끔히 고개를 내밀던 새싹은 나를 탓하겠지
아저씨 누구 마음대로 남의 대문 앞에 사람을 버렸느냐고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야! 이 녀석아!
너처럼 땅속에서 땅 밖으로 나오는 처지를 헤아리면
내가 남의 대문 앞에 앉아 있는 것으로 발견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라
우리는 지금 상반된 처지로서
반대로 나처럼 땅 위에 땅속을 들여다보면 땅속이 밖이 되고 마는 것이지
서로 공평한 거야
따지고 보면 우리는 공범이지
피장파장이란 이 말이야
알았니! 대낮에 남의 대문 뜯는 소리 그만하고 가만히 있어라."
호통치면
새싹은 금방 새치름한 표정으로 쏘아붙이겠다
"아저씨 여기는 내 자리예요
재작년, 작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새싹은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켰다고요
이런 말 아세요.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아저씨 그건 절대 예의가 아니지요
이러면 정말 봄은 섭섭하고 새싹은 부대껴 못 살아요.
아저씨 내 친구 별명이 뭔지 아세요
장애인요.
왜냐하면, 눈치가 없거든요
아저씨 이제 아셨지요."
꽝!
이 좋은 봄 웬 망신살이 뻗쳤단 말이냐.
졸지에 예의가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이건 정말 내가 눈치도 없고 예의도 없는 태생이 되어 버리다니
그래 역시 봄도 아무나 알아보는 것이 아니랑께.
내 고유의 담백한 사투리로 구시렁구시렁 거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