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배불리 먹고 볼일도 없건만 유난히도 좁은 방에서 바닥이 팰 정도로 서성이고 있었다 비가 온 끝이라서 그런지 창밖 날씨는 우중충하였고 나는 감기 기운이 감도는 탓으로 일찍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솔밭을 걷다가 어느새 보리밭 사잇길을 가로질러 깊은 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용히 눈을 뜨고 몇 시나 되었을까 싶은 마음으로 벽시계를 바라보니 이런 내 마음을 비켜가듯 시간은 이미 다 증발을 했는지 가출 중인지 움직일 줄 모르고 있었다 똑딱똑딱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야무지게 보도 위를 걸어가는 발자국을 내 귀에 따그랭이가 생기도록 찍어대더니 이제 그리운 한 마리의 딱따구리가 되어 비상하고 말았는가 말이다 시간은 가출하고 시계는 덩그러니 집을 비우고 또 다른 시간을 초빙이라도 하려는 듯 묵묵히 시침과 분침을 유지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냥 있으면 눈치 없는 내가 되는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서랍을 열었다 새 건전지 두 개를 꺼내어 시계 뚜껑을 열고 살짝 갈아 주었는데 활동을 개시하지 못하고 여전히 경직된 몸으로 멈추어 있었다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단비가 토닥토닥 대지 위에 내리듯 속삭이며 왜 그럴까? 살짝 속을 떠봐도 효과는 없었다 시간은 왜 시계가 잠을 자도록 내버려놓은 채 시계를 잘 부탁한다는 말 한마디 내게 귀띔도 주지 않고 뛰쳐나갔단 말인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혼 없는 육체의 망각 같은 것으로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세 그릇씩이나 저녁을 먹었건만 내 뱃속에는 거지 군대가 진을 치고 대치하며 시위를 하는지 꼬르륵꼬르륵 멋울림 소리를 내면서 밥 달라고 재촉을 한다 사람이 간사하다고 하더니만 어찌 이렇게 뱃속까지도 간사한지 배부른 것도 잠깐 벌써 허기를 빙자하여 빈 나루터에 나와 곧 먹을 것을 하나 가득 싣고 나루터에 들어올 나룻배를 기다린다 작년 여름에 내가 살았던 삼성동 집은 삼 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맨 아래층에 나루터 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해가 기울면 온 종일 직장에서 부대끼며 숨 가쁘게 일하다 겨우 저녁이 되어서야 일에서 손을 떼고 아주 홀가분한 마음 하나만을 싣고 속 시원한 모습으로 하나 둘 사람들이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속절없이 쏙쏙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나루! 나루! 새 나루구나!. 많은 직장인이 하루를 짊어지고 저녁밥을 실어 넣기 위해 잠시 들어와 정박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에 스트레스를 내리고 하루에 일을 놓고 옥신각신 따지기도 하고 직장 상사의 불같은 성정에 시달렸다며 오늘은 이상하게 인쇄 마감 시간에 쫓겨 점심도 못 먹었다는 둥 직장생활에 타박으로 사람 살아가는 타박에 이르기까지 총알처럼 쏭알쏭알 쏘아대는 성화에 못 이겨 한 잔의 술을 만끽한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술 한 모금을 머금고 속이 후련해지도록 담배 연기를 힘껏 내뿜으며 훌훌 재를 털어낸다 펄펄 끓는 생태찌개에 밥 한 공기 든든히 뱃속에 채운다 그리고 어두운 밤 결에 배부른 육신을 넉넉하게 띄워 사공으로 고즈넉한 달빛 아래 여유롭게 떠가는 서정을 부른다 시계는 죽어서 고물이 되지만 우리네 인생은 나루터 같은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다가 홀연히 육체를 떠나는 영혼으로 신 앞에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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