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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온전한 사랑의 안착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0818 등록일: 2012-02-18
온전한 사랑의 안착

물이 끓는다
잠시라도 배고픈 것을 못 참는 성격에 어떻게 점심을 걸렀는지
나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가스레인지 옆에 살포시 놓여 있는
라면을 정신없이 뜯어 예전처럼 끓어오르는 물에
먼저 건더기 수프를 퐁당 넣은 다음
분말 수프를 뜯어 끓는 물에 넣었다
그리고 왜 그럴까 싶게
푸석푸석한 낯빛에 가려져 있던 내 얼굴에는
추억의 한 토막 이야기가 떠오르며 가는 미소를
파르르 머금고 입가에 주름을 펴왔다
1997년 당시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IMF가 터지고
나는 이듬해인 1998년 충남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내 고향을 잠시 등지고
대전 중구 문화동 한밭도서관 앞에 방을 얻어 나왔다
그런데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당시 대학에 다니고 있던
고향 후배는 종종 공부하러 한밭도서관에 나왔다가 때가 되면
어디가서 혼자 청승스럽게 밥 사 먹기도 마땅하지 않은 탓으로
라면을 사 들고 찾아왔다
그러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라면을 끓이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라면 조리법을 놓고
옥신각신 말다툼했다
고집하면 정씨 고집이라고
나는 내 생각대로 면을 넣기 전에 꼭 수프를
먼저 넣었는데 꼭 이 대목에서 후배는 태클을 걸었다
아주 사소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문제였으나
일반적인 라면 조리법과는 어긋난다는 것이다
라면 봉지 뒤에 설명하고 있는 대로 물을 끊인 다음
면을 먼저 넣고
수프를 넣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면을 제치고
수프를 먼저 넣으면서
고정관념을 깨라는 한 마디를 잊지 않고 해주었고
이에 질세라 후배도 제 고집을 굽히지 않은 채 이런 말을 하곤 했다
"형 정말 라면 끓일 줄 모르네
라면은 나한테 맡기고 형은 방에 들어가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어."
그렇다고 쉽게 물러날 내가 아니었다
끝까지 줄기차게 나는 끓는 물에 먼저 수프를 넣었고
후배 또한 지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끓는 물에 면을 먼저 넣었다
나는 고정관념을 깨라며 후배에게 핀잔을 주면 후배는
형은 라면도 제대로 끓일 줄 모르는 사람이라며
얼른 방에 들어가 텔레비전이나 보라고 핀잔을 주며 
시큰둥하게 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는 라면을 제대로 끓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입으로는 수프가 먼저냐 면이 먼저냐 떠들면서도
후배의 동작이 나보다 빨랐기 때문에 수프보다
면이 먼저 들어갔기 때문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라면을 끓이다 라면 끓이는 요령을 터득했다
처음에는 나도 면을 넣고 수프를 넣는 순서대로 라면을 끓이다가
면을 넣고 수프를 넣었는데 가만히 보니 수프가 물과 섞이지 않은 채
라면 위에 고스란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차 했다
수프는 국물 맛인데 물과 섞이지 않으면 어찌하라는 말인가
그때부터 나는 라면 끓이는 방법을 바꾸어 수프와 물이 충분히 섞여 국물 맛이
조금이라도 더 우러나도록 면보다 수프를 먼저 넣었던 것이다
아무튼 열심히 싸우면서 끓인 라면을 우리는 늘 사이좋게 앉아서
하나도 남김 없이 맛있게 건져 먹었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보리차를 끓일 때에도 남들과 달랐다
남들은 끓는 물에 보리를 넣어 우려냈지만 나는 건망증이 있는지
늘 하는 일이면서도 주전자에 잔뜩 물만 올려놓고
물이 펄펄 끓어 넘칠 때까지 보리 넣는 것을 잊은 채 줄기차게
애꿎은 물만 주전자에서 넘치도록 쫄쫄 볶아대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주 흔한 일상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제 우리에게 아주 흔한 일상이 되어 버린 라면을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면서
오늘도 우리 동네 어느 집에서 라면 삶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입가에 내 삶을 보듬어 내듯 고향을 찾아온 듯하게
푸근하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내려놓는다
아! 감회가 새롭다
그렇게 라면을 삶던 내 모습이 얼마나 한 장의 추억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 거울처럼 비추어지면서
아! 오늘도 이름 모를 어느 집에서 라면 삶는
그녀, 혹은 그는 정말 아름답고 너무 사랑스럽기만 한
또 하나의 분신과 같은 나라는 것을 알기에
내 몸처럼 오묘하게 익숙해진다
누군가는 말했다
먼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남은 곧 내 모습이고 또한 내 모습은 곧 남의 모습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에 조건을 갖춘 대상이란 말인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 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을 사랑으로 실현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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