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 / 문인서재 / 문학관.com / 문인.com

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
문인.com
작가별 서재
김성열 시인
김소해 시인
김순녀 소설가
김진수 큰길 작가
김철기 시인
류금선 시인
문재학 시인
민문자 시인
배성근 시인
변영희 소설가
송귀영 시인
안재동 시인
양봉선 아동문학가
오낙율 시인
윤이현 작가
이기호 시인
이영지 시인
이정승 소설가
이룻 이정님 시인
이창원(법성) 시인
정선규 시인
정태운 시인 문학관
채영선 작가
하태수 시인

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




▲이효석문학관

 
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은행나무 주먹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0379 등록일: 2012-01-29

은행나무 주먹

얼마 전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희뿌연 먼지를 책표지에 잔뜩 끼고 있는
아주 오래된 책 한 권이 내 손아귀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덩그러니 방바닥으로 쏟아졌다
빛바랜 은행나무 잎이 책에서 흘러나와 내 발아래 둥지를 틀어 앉는데
매우 반가웠다
벌써 추억 속으로 빠져버린 은행나무 잎으로 만든 책갈피를 만나다니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 누나는 네 잎 달린 토끼풀이나
샛노란 은행나무 잎을 주워 책장에 살짝 꽂아 놓곤 했었다
특히 작은 은행나무 잎은 그 끝이 두리뭉실 매끄럽게 깎은 듯한 몇 개의
곡선미가 돋보이는 봉오리는 어딘지 모르게 사람의 손등을 잘록하게
튀어나온 관절뼈를 떠올리는 듯한 깊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일까?
내 조카들 생각이 난다
큰 누나로부터 난 조카가 둘인데 큰 아이는 명희이고
작은 아이는 지철이 인 데
누나가 친정나들이를 오거나 아니면 내가 어머니 심부름으로
경주로 내려가거나 방학 때 놀러 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 녀석들과 함께하면서 장성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 생에 이처럼 어린아이가 장성해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인가?
누나가 큰 조카를 재워놓고 화장실을 갔는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
깊은 잠에 빠진 명희를 보니 머리가 이상했다
내 생에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이 있었으니
이마 위의 머리 한가운데가 매우 물컹거리면서 들숨과 날숨을 쉬듯
들쑥날쑥한 것과 잠을 자면서도 연신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꼼지락 꺼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빈손에 그 무엇을 잔뜩 쥔 듯 꼭 거머쥐고는 전혀 펼 줄 모르곤 했는데
나는 그것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호기심으로 내 손가락 하나를 귀엽고 작은 조카의
손바닥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그러면 조카는 세상에서 무슨 고귀한 보물이라도 잡은 양
잠에서 깰 때까지 절대 손을 펴지 않았으며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내 손가락 끝으로 알 수 없는 옹 앓이를 하면서 짜릿하게 들려오는
뭔가 꽉 찬듯한 느낌에 나는 굳이 손가락을 빼려고 하지 않은 채
녀석이 다만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옆에 누워 기다리다
나도 모르게 깊은 잠이 들곤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튼 내 큰 조카는 그 후 무럭무럭 잘 자랐고 내 작은 조카 지철이가 태어났다
큰 아이 명희는 어려서부터 잘 울지 않고 다소곳하면서도 얌전하게 잘 자랐다
하지만 작은 아이 지철이는 남자아이티를 내느라 그러는지 몰라도
별종 맞게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역시 큰 아이 명희처럼 잘 울지 않아서 돌보기는 좋았으나
때로는 너무 조용해서 뭔가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녀석을 나한테 맡겨놓고 빨래한다고 밖으로 나갔고
나 혼자 지철이를 보다가 열린 방문 사이로 따사로운 4월의 담장 아래 샛노란 개나리
꽃그늘 아래 땅에 배를 바짝 붙이고 촌곤증이 왔는지 깊은 낮잠을 자는 멍멍이의 모습에
역시 개 팔자가 상팔자구나 싶은 마음에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너무 조용한지라 뭔가 이상하다 싶어 옆을 돌아보니
세상에 이럴 수가!
녀석은 언제 볼일을 봤는지
큰 것에 작은 것을 방바닥에 섞어놓은 채
무슨 말이라도 탄 양 그 위에 앉아서 똥, 오줌을 뭉개어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여 철썩이며
그 작은 손에 크고 작은 배설물을 잔뜩 묻혀서는 물에 밥 말아 먹듯
손으로 퍼 먹고 있었다
순간 나는 웃기기도 하면서 당황하여 매우 급하게 누나를 불렀고
누나는 황급히 방으로 뛰어들어와
애 하나도 제대로 못 본다며 얼마나 핀잔을 주던지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으로 피어나는 추억이지만
그때 내 마음은 얼마나 급했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후 세월이 지나
지철이가 초등학교 다니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온통 얼굴에 시커먼 멍이 들어 있었다
나는 지철이를 불러서 물었다
"너 얼굴은 왜 그래" 하고 다그쳤더니
이 녀석 말이 가관이다
" 내 옆 짝꿍이 내 연필을 가져가서는 안 주잖아 그래서 친구랑 싸웠어."
나는 더 크게 화를 내면서 물었다
"그래서 친구한테 맞고 온 것이야."
녀석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내는 그 놈한테 한대 맞고 나는 그 놈을 두 대 때렸다"
누가 경상도 사내가 아니랄 까봐서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그때 당시 그 녀석의 대답에 참으로 듬직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리 만큼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비교하여 알게 되었다
큰 녀석 명희는 여자아이라서 그런지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우거나 혹은
말다툼을 하거나 서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집으로 와서 다짜고짜 울기 일쑤이면서도
평상사에는 저희 친구 아무개의 이야기에서부터 저희 담임 선생님 이야기애 이르기까지
심지어 저희 친구 오빠에 엄마에 다다르는 이야기까지 다 하면서 수다를 떠는지
그야 말로 지지배배가 따로 없이 예쁘기가 그지 없었다
이제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큰 주먹을 펴고 세상을 크게 도우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세상을 이기고 선한 일군으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댓글 : 0
이전글 개울가에서
다음글 그날의 서정
번호 제목 작성자 추천 조회 등록일
499 시.시조 향불 정선규 0 9669 2011-08-03
498 시.시조 별 무리 정선규 0 10025 2011-08-02
497 시.시조 해 길이 정선규 0 10192 2011-08-01
496 시.시조 연기하는 봄 정선규 0 10239 2011-07-29
495 시.시조 고향의 아침 정선규 0 10563 2011-07-27
494 수필 요즘 미용실 정선규 0 9385 2011-07-27
493 시.시조 셋 방 정선규 0 10219 2011-07-26
492 시.시조 풀밭 정선규 0 10396 2011-07-25
491 시.시조 비 내기 정선규 0 10090 2011-07-25
490 시.시조 유채 밭 정선규 0 10185 2011-07-24
489 시.시조 봄바람이 정선규 0 10133 2011-07-23
488 자유글마당 긴장의 고리 정선규 0 9381 2011-07-20
487 시.시조 포도 익는 마을 정선규 0 9901 2011-07-20
486 시.시조 소년의 밤 정선규 0 9156 2011-07-19
485 시.시조 삭제된 게시물 입니다. 정선규 0 92 2011-07-18
71 | 72 | 73 | 74 | 75 | 76 | 77 | 78 | 79 | 80
이 사이트는 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문인 개인서재)입니다
사이트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

 

Contact Us ☎(H.P)010-5151-1482 | dsb@hanmail.net 서울시 구로구 고척동 73-3, 일이삼타운 2동 2층 252호 (구로소방서 건너편)
⊙우편안내 (주의) ▶책자는 이곳에서 접수가 안됩니다. 발송전 반드시 전화나 메일로 먼저 연락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