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동안 내 가슴이 막 설렘 하는 어린아이 마음 같은 설은 아니건만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련한 추억을 보듬어 오른다 어느 해인가 그 해 설날 우리 고향에 많은 눈이 내렸다 새해 첫날 마당으로 나와 첫 마음으로 처음 시간으로 맞이하는 하얀 눈에는 내 마음을 벅차게 끌어올리는 펌프질이 있었다 밤새도록 소록소록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쌓였는지 처마 끝을 올려다보는데 새치름하게 쌓인 눈은 뽀송뽀송 물오른 새살처럼 도톰하면서 앙증맞게 앉아서 우리 집 앞마당에 뽀얗게 흐드러진 눈을 마중하며 금방이라도 뽀드득뽀드득 우람한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그렇게 누구를 기다리듯 바라는 마음으로 얼마나 더 지켜보고 있었을까 그것은 단순한 눈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단 하나만으로 순수하고 단아하면서 눈부신 공중으로 하나의 섬을 하얗게 덮은 채 떠 있는 솥뚜껑이었다 말이 솥뚜껑이지 좀 더 엄밀하게 살펴보면 이 세상에서 아주 고귀하면서도 진귀한 하얀 거북의 등이었다 내 생각 같아서는 금방이라도 뛰어가서 아직은 그 누구도 전혀 만져보지 못한 고운 살결 남몰래 도둑질하여 나오는 못된 뽀스락지가 숨어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남의 손을 타지 않은 남다른 감회가 반짝이는 거북이 등을 자꾸만 더 보듬어 더 하얗게 만들어주고 싶은 모성애를 닮은 마음으로 간절했다 어머니가 흰머리 뽑는다며 내 머리를 건드릴 때면 나도 모르게 사르르 녹아 잠이 들었던 것처럼 거북이도 내가 등을 더 하얗게 보듬어주면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더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하겠지 하는 당돌하다 할지 막연하다 할지 모를 생각이 불기둥처럼 불끈 솟아올랐다 중년의 이 나이에도 그 동심을 버리지 못했는지 가끔 눈이 쌓인 아침을 맞이하면 소복을 겹겹이 껴입은 여자를 만나고 있음 직한 생각에 잠긴다 여기에 한 가지의 소품을 첨가한다면 더 멋질 것만 같다 내가 하얀 눈을 보았을 때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을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성스럽게 차려놓은 밥상의 하얀 쌀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머리 풀어 오르듯 아지랑이가 오른다면 좀 더 독특하지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주걱 같은 손으로 살포시 퍼올려 지압하듯 손바닥으로 꼭꼭 눌러 주먹밥을 만들어 하루로 저물어가는 서산 너머로 해에 던져주는 것이다 아! 벌써 내 입가에 파다한 미소가 흐른다 그 누구도 밟아보지 않은 눈부신 눈에 온 종일 눈 맞춤하고 있으면 어느새 햇살은 내가 말릴 틈도 없이 하얀 엉덩이 속살을 야금야금 뜯어 먹으며 나무 아래 살짝 토라지게 앉아서 그늘 우산을 쓰고 모른 척 시치미떼면 왜 그렇게 햇살이 밉살스럽기만 한 것인지 꼭 미운 일곱 살 어린아이처럼 아른아른 번질 때면 나는 의연한 마음으로 "어쩔 수 없지." 한껏 옹 앓이 내뱉으며 다시 쌓인 눈을 바라보면 벌써 눈은 반짝반짝 모래알로 여물어 탱글탱글 싱그럽게 묻어나오는 품위에 백옥 같은 형상을 입고 주옥같은 아롱진 은빛 여울을 톡톡 터뜨려 땅속으로 스며가는 잔상의 겨울인가 겨울의 잔상인가를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플 만큼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구절초는 눈 속에서 피어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마치 김치에 양념이 빠진 것만 같이 텁텁하면서 떨떠름하게 뒷맛이 일어난다 그래도 내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눈이 내린 아침이면 눈을 품은 설에 나도 있었노라 꿈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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