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혼자 산다는 것은 어쩌면 여자가 되어가는 세상풍경인지도 모르겠다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수그러들 때면 내 어머니는 저녁 찬거리를 놓고 걱정하셨다 "오늘 저녁은 또 뭘 해먹지 반찬거리도 없는데 칼국수나 해먹을까? 아니면 오늘 낮에 텃밭에서 뜯어온 상추 쌈이나 해먹을까?" 툇마루 끝에 혼자 앉아 중얼거리시는 일상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나. 막내는 이런 어머니를 마주하면서도 엄마이기에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오히려 끼니마다 그게 호강이라는 것을 모르고 매일매일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을 볼 때마다 또 김치찌개이네! 된장찌개이네! 시금치는 싫다는 둥 김은 왜 없느냐는 둥 반찬 타박에 여념이 없었다 밥상머리에 앉아 코보다 더 뾰족하게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고는 밥 먹기 싫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사치스러운 그리 호강은 오래가지 못한 채 내가 스무 살 된 해 어머니는 족히 15년 넘게 안고 계시던 폐결핵을 털어내시지 못하시고 돌아가셨고 나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직장에 다니며 자취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길 가다가도 배가 고프면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사 먹고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어느 때에는 집에서 중국 음식에 수제비 떡국 칼국수 닥치는 대로 시켜 먹었다 하지만 자취생활이 길어지면서 생활비보다 식대로 들어가는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마저도 입에서 멀어져가야만 했다 그 후 나는 집에서 밥만 해서 반찬은 시장에 나가 먹을 만한 것으로 골라 사다 먹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맛은 온데간데없고 밋밋하고 싱겁기만 하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빠져나가는 돈만 많았다 이렇게 나는 몇 년간을 먹거리를 놓고 방황하다시피 하다 결국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김치 한 가지라도 내 손으로 직접 담아 먹어야지 하는 큰마음을 먹고 그동안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던 배추에 눈을 돌리고 채소 가게마다 들렀다 "아줌마 배추 한 포기 주세요." 큰소리 뻥 쳐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김치 담그는데 들어가는 재료가 떠오르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채소가게 아주머니를 잡고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일일까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괜히 말했다가 얼굴이 빨개질 것만 같기도 하고 혹여 채소 가게 앞을 지나가는 어느 남정네가 듣고 남자 망신 다 시킨다고 금방이라도 면박 줄 것만 같으니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었다 끝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배추 한 포기를 받으며 5천 원을 주고 채소 가게를 나와 이리저리 쭈뼛거리며 시장을 걷다가 마늘이 보이면 속으로 그렇지 마늘하고는 마늘 가게 앞에 서서 물오른 물망초같이 화들짝 피는 목소리로 "아줌마 마늘 주세요." 하고 다시 몇 발자국 가다가 고춧가루가 보이면 얼른 고춧가루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서서 "아줌마 그것 고춧가루 주세요." 뭐 큰일이라도 난 양 고래고래 소리를 높이곤 했다 이렇게 보이는 대로 사다 보니 어느새 한 짐이다 배추, 까나리 액젓, 고춧가루, 파. 소금, 마늘, 김치 담을 큰 그릇, 생강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 김치 한 번 담아본 일이 없는 내가 어찌 김치를 담겠다는 말인가 고민고민 온 종일 고민하다 어디 가서 물어보기에도 창피하다 싶어 망설이다 우리 주인집 아주머니를 찾아가 살며시 물어보곤 했다 쉽게 말이 안 나와서 처음에는 "저기 아줌마 거기 있잖아요, 그것" 밑도 끝도 없이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뻔히 바라보면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야 할 말 있으면 빨리해 지금 나 바빠" 한 면박 먹고서야 겨우 "아줌마 김치 어떻게 담아요." 하고 어렵사리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씻어서 양념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씻기는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양념을 해야 하는 줄 몰라서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빈 그릇에 고춧가루 까나리 액젓과 마늘 찐 것 그리고 파를 썰어 넣고 생강을 쪄 넣어 손으로 버무린 다음 소금에 절인 배추를 씻은 다음 버무린 양념을 배춧잎을 꼼꼼하게 들추어가면서 양념이 빠지지 않게 잘 처발라야 하는 것을 할 줄을 모르다 보니 양념을 버무리지 않고 고춧가루는 고춧가루대로 마늘 찐 것은 마늘 찐 것대로 따로따로 배추 위에 뿌려댔으니 첫 작품은 완전히 물 건너갔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아무튼 지금까지 혼자 살다 보니 늘 끼니때마다 아침은 뭘 해서 먹을까 또 점심은 뭘 해서 먹어야 하나 고민이지만 결국에는 만만하게 보이는 김치만 꺼내고 만다 말하면 잔소리이지 오늘 저녁 메뉴는 김치찌개에다 김치볶음이다 요즘 매일 김치만 씹었더니 이제는 시거운 포도알을 씹는 듯 시린 이도 없건만 잔뜩 힘을 주어 생기다만 얼굴처럼 찌푸릴 듯한데 아랑곳하지 않는 전기밥솥에서는 김을 모락모락 지피는데 뭐랄까 들에서 묻혀온 흙냄새라고나 할까 아니면 고향 편에 날아오는 고유한 향수 발림이랄까 뭐 이런 것이 코끝을 물씬 당긴다 혼자인지라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주걱도 필요없이 그저 수저 하나로 쿡쿡 밥 옆구리를 찔러 신 나게 더듬어 한 그릇 퍼 담는다 수저로 밥 옆구리를 살짝 찔러 가볍게 들어 올리면 적게 달려나오면서 또 한편으로는 밥 옆구리를 깊이 수저로 찔러넣으면 찍소리도 못하고 푹 하고 달려나오는 아주 독특한 힘을 본다 누가 거지에게 밥을 퍼 주느냐에 따라 거지의 밥 양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힘과 배고픈 사람 앞에서 많이 달려갈 수밖에 없는 힘 없는 밥의 처지가 비례하여 나오는 권력의 일상 그 부조리에서부터 평범한 내 일상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양면성을 지닌 것으로 떠오르는 것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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