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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행복밥상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1106 등록일: 2012-01-08

행복밥상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벌써 내가 고물을 한지도 일 년이 가깝다
매일 아침이면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아웅다웅 살아가는
마법에 매료당한 것처럼 시린 손을 훈훈한 입김으로 호호 불며
손수레를 끌고 거리에 나선다.
어찌 보면 내 일상은 참으로 살맛 나지 않는 밋밋한 그림이다
늘 어제 그 시간이면 손수레를 끌고 또 그 거리를 돈다.
하지만 찬바람을 가르며 거리 속으로 문지방을 활기차게 밟으며
한 고물이 물건으로 어제 떠난 자리에 오늘도 어김없이 약속을 지키듯
층층이 도톰하게 푸근하게도 자상한 모습으로 쌓였을 물건을 생각하며
당기는 구미에 안달이 나서 뛰다시피 종종걸음을 친다.
작년 4월 내가 처음 고물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개척한 루트를 따라
어느 집에서 몇 시에 파지가 나오고 신문이 대박 나며 물랭이가 물밀 듯이 쏟아지는지
그 정보를 알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재미에 푹 빠져 농땡이 한 번 부리 지거나 게을러질 시간 한 번 없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리다가는 이미 나와 있는 물건을 송두리째
나보다 빠른 그 누군가에게 다 빼앗기고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지경에 빠지기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
보통 선화동 여관 골목을 지나서 중촌동 현대칼라에서부터 내 작업은 본격적으로 시작 된다
그전에 선화동 여관 골목을 지나게 되지만 최근 한 달 동안 폐지 한 장이 나오지 않아
전혀 기대 없이 지나간다
그런데 오늘 비로소 그 장엄했던 역사의 틀이 깨어졌다.
아주 간곡하게
여자들 말대로 어머! 하고 깜짝 발랄한 반 박자 숨소리에 숨을 죽여야만 했다 
내일 세상이 망한다고 해도 폐지 한 장 나올 것 같지 않았던 곳에서 일이 벌어졌다
선화동 대전금고 제작소 앞을 지나는데 주인인듯한 사내가 가게에서 나와
자동차에 시동을 걸다가 나를 보고 불현듯 무슨 생각에 이끌렸는지 급하게 차에서 내리더니
"아저씨"하고 나를 부른다.
나는 주방에서 뭘 훔쳐먹다 들킨 양 놀라면서 얼른 대답했다
"예. 사장님."
그는 누군가에게 쫓기듯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빈 종이상자도 가져가세요. "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활기띤 목소리로
"예 가져갑니다."
맞바로 받아치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게 안에서 내 키보다 더 크고
내 덩치보다 더 우람한 종이상자 빈 것 세 개에 플라스틱에 작은 종이상자를
두둑히 담아 푸짐하게 내다주면서 부산하게 말했다
"가져가시는 할머니가 있는데 요즘 안 오시네요
어디가 편찮으신지 할머니 오시기 전에 빨리 가져가세요."
나는 무슨 굶주린 사자라도 된 것처럼 힘차게 달려들어 다부지게 물건을 실으면서
왠지 오늘은 물건이 흐드러지게 많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날마다 아침이면 이런 생각을 한다
또, 오늘은 짠 ~ 하고 어디쯤에서 해가 뜰까?
할 수만 있다면 남모르는 곳에서 대박 났으면 하고 바라며
어느덧 중촌동 현대칼라에 도착해서 물건을 싣는데
관리부장님이 까만 비닐봉지를 내민다
"이것도 가져가세요."
나는 뜻하지 않은 탓으로 놀라며 되물었다
"뭔데요." 하니
"우리 집 수도꼭지 고쳤어."
까만 봉지를 들춰보니 고장 난 주방에 수도꼭지 그것은 비싼 신주였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언제나 현대칼라에 일거리가 꽉 차고도 넘쳐 흐르기를
마음속 깊이 기원하며 폐지와 종이 상자를 싣고 데이즈 슈퍼 길 건너 맞은 편집을 바라본다.
작년 여름에 주인아저씨께서 지나가는 나를 부르며
"아! 이 사람아! 왜 이렇게 늦어 좀 빨리 와 이것 주려고 자네만 기다렸잖아
늦으면 다른 사람이 다 가져가. "하시면서 너털웃음을 보이시더니
그날과 그 다음 날 양 이틀 동안 이불과 옷을 두 수레 안겨주었던 것을
생각하며 서둘러 걸었다
눈에 익은 간판 하나가 또 보인다
영 프레임. 액자. 표구.
아! 감회가 새롭다
감동이 밀려온다
역시 작년 여름 이곳을 지날 때 사장님께서 지나가는 나를 보시고는
씩 웃으시며 손수레 위로 파지와 타고 될 멀쩡한 자전거 한 대를 올려 주셨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며 흘러나오는 미소를 살짝 감추고는 부지런히 걸어
드디어 중촌동 현대아파트 앞을 가로질러 금성건강원 앞 건널목 앞에 서 있다
가슴이 뛰며 설렌다
자주는 아니지만 잊어버릴 만하면 다시 생각나게 어느 날 홀수 짝수 순번제로
내놓으시듯 건강원 앞 계단에 빈 종이 상자를 아주 자상하게도 눈에 띄기 쉽게
가지런히 모아 내놓는다.
어디 이뿐이든가
금성건강원에서 몇 발자국 올라가 다 모 토리라는 술집 옆에 음료수 창고가 있는데
이곳을 지날 때면 작은 음료수 종이 상자를 손수 간종간종 펴서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이
꼭 형제 많은 집의 다복한 우애로 쌓아놓은 듯하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건을 싣고
대전광역시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향한다
이곳은 정말 언제 뭐가 어떻게 나올지 모를 수이다
날마다 수확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운 좋은 날이면
아이들이 쓰던 물랭이 서랍장이나 소품들이 나올 때가 있는가 하면
바로 뒤에 길 건너 맞은 편에 있는 건물 강 바다 낚시터 옆 창고에서도 2~3일에 한 번 빈 종이 상자가
주섬주섬 미끄러져 나와 나를 반긴다.
그 누구 눈치를 볼 것도 없이 확 끌어다 싣고 남에게 빼앗길까 봐 줄 달음질쳐
중촌동 예안교회 뒷골목을 서열 하듯 넌지시 들어가 살피면  
어느 집 대문 앞에 폐지와 신문이 가지런히 묶여 있다
물건을 싣기 전에 누구의 정성일까?
매우 고마운 마음에 가만히 서서 보고 있으면
정성 들여 부모님 제사상을 차려놓은 듯한 감동에 젖곤 한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 다시 걸음을 재촉해 중촌동 하상도로 쪽으로 빠져
정신없이 달려가는 곳은 카라텍코리아 이다
역시 이곳 사장님도 어느 날 손수레를 끌고 가게 앞으로 지나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밖으로 뛰어나와 나를 불러 호들갑스럽게 달려가니 모아 놓았던 신문과 폐지와 책을
한꺼번에 홀랑 다 내주셨다.
나는 좋으면서 좋다. 표현은 못 하고 괜히 혼자 심통을 부리듯 투걸거리며 닥치는 대로 죄 없는
깡통을 요리조리 발로 돌려차며 다음 정류장인 중촌동 중앙고등학교 부근의 동네를
내질러 마당울림 터를 스치면서 그 옆집을 바라보고는 감회에 젖는다.
언젠가 이곳을 지날 때 이 집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청소를 하시다가 지나가는 나를 보고
세우시고는 신문 한 묶음괴 폐지를 한아름 한꺼번에 안겨 주셨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며 밀려오는 감동에 젖어 흥얼 거린다
"사람은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저 멀리 대명 자원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대명 자원을 앞에 놓고 삼성 사거리 쪽으로 손수레를 돌려 미성 광고 공예를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도 얼마 전 사장님께 폐지와 책을 받았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초대에 불러주시는 분들이 있어
나는 거저 참여하는 행복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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