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은 10년에 한 번 변한다는 데 인생은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잡기 하듯 질주의 본능으로 무조건 몸이 달아 김치처럼 변하며 맛이 드는가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 내 기억으로는 한 2년 전 무더운 여름 대전역 광장 나무 아래에서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다 참 누가 보더라도 멀쑥하고 깔끔하면서도 단아한 외모에 단정하신 모습에서 말 그대로 영국신사와도 같았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작년과는 달리 올해 여름에는 그렇게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가끔 내가 대전 역광장을 걸어가면 장난치느라 지팡이로 내 엉덩이를 살짝 건드리면서 "아프지>" 하시며 싱글싱글 웃기도 하시고 대전역 지하상가를 지나가다 누군가 뒤에서 큰 소리로 "어이! 어이!" 하고 불러 뒤돌아보면 할아버지는 음료수 자판기를 향해 걸어가시면서 "점심 먹었어." 하고 물으시며 시원한 캔음료를 빼주셨다 처음 내가 할아버지를 대전 역광장에서 만났을 때가 지금도 내 마음에 생생하다 전혀 낯모르는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쿡쿡 찌르며 말했다 "막걸리 한잔해야지" 하시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인데 내게 아는 체를 하면서 막걸리 한잔해야지 하시더니 조금에 망설임도 없이 호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주시려 했다 나는 황당했지만 그래도 어디에서 한 번쯤은 본적은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찬찬히 할아버지 얼굴을 뜯어보았지만 내 기억 그 어디에도 떠오르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할아버지 저 막걸리 안 마셔요" 하고 씩 웃자 하시는 말씀이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시고 계셨던 것인지 "어제 역전공판장에서 막걸리 사 가는 것 봤어." 내 생에 이런 감격은 처음이었다 아무튼 할아버지와 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나는 며칠 동안 할아버지가 안 보이는 날이면 왜 안 나오셨을까? 어제 감기 걸렸다며 병원 다녀오신다고 가시더니 혹 더 악화 된 것은 아닌지 이리저리 나 혼자 잣대를 들이대곤 했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잊어버렸다가도 오랫동안 할아버지가 안 보인다는 것을 알고는 굉장히 궁금하게 생각했었는데 오늘 조금 전에 대전역전공판장으로 저녁 먹거리를 사러 목척교를 지나 대전역전 지하상가를 지나다 우연히 할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전에는 중풍 들린 사람처럼 손을 떨지도 않으셨고 술 드신 모습을 접해본 적이 없었거늘 오늘 지금 이 순간은 정말 의외였다 그렇게 눈이 맑고 총명하시던 분이 눈은 초점을 잃으신 채 옷에는 희멀건 얼룩이 알록달록 단추 달리듯 달렸는데 어떻게 보면 막걸리를 마시다 흘리신 것이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물이 아니겠는가 싶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꽤 추운데 윙윙 돌아가는 환풍기 아래 바람을 맞으시며 부들부들 심하게 손을 떠시면서 라이터불을 당기시고 계시는데 환풍구에서 흘러나오는 바람 때문에 자꾸만 꺼지곤 했다 순간 나는 걱정이 덜컥 났다 중풍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이런 할아버지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얼른 나섰다 "할아버지 추우신데 왜 여기 혼자 계세요 점심은 드셨어요" 하면서 할아버지 손을 꼭 잡았다 매우 차가웠으며 오랫동안 지쳐 있는 듯한 눈빛으로 역력했다 순간 불길한 예감에 나는 휩싸였다 혹여 돌아가시는 것은 아닌지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드디어 내 손까지도 떨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이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나를 바라보시며 여느 때와 같이 싱글싱글 웃으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웬일인지 통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할아버지에게 손자였는지도 모를 일이고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할아버지의 막내아들처럼 나를 마음에 두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를 빼앗아 바람을 등지고 담뱃불 대신 붙여 드렸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댁까지 모셔다 드릴까 싶은 굴뚝 같은 마음이 솟아오르는데 자꾸 나한테 가라고 손짓하신다 마음은 놓이지 않았지만, 재빨리 역전공판장에 가서 밀가루를 사서 그 자리에 다시 와보니 아무도 없었다 이게 마지막 이별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내 마음은 자꾸만 홍두깨질 당하며 가슴에서 마음으로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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