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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
비로 난리 났어요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5617 등록일: 2010-09-30
비로 난리 났어요

온종일 빗 님이 자박자박 하늘에서 먼 길을 오고 있습니다
소식이라도 주고 오실 일이지 이렇게 불현듯 오시면 어쩌나요?
나무들도 풀들도 빗 님 모아 담을 그릇을 준비할 시간을 주셔야지요?
빗 님 정말 이렇게 난리로 오시렵니까?
지금 창밖이 난리가 났어요
나무들이 서로 빗 님을 많이 담으려고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그릇을 빌리고 부족한 그릇 메우느라고 철물점에 무디기로 뛰어가
쭉 줄을 서 있느라고 교통 대란이 나고 철물점 배달 전화가 폭주해서
전화받을 시간도 없다고 나한테 와서 봐달라는데 빗 님 이것이 무슨 난리라요
풀은 나무에 고함을 지릅니다
자리 좀 비켜 달라고요
그래야 자기들도 빗 님을 시원하게 빨아들일 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는지라 여분을 사재기해야 하는데
그릇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빗 님 어쩐대요
이렇게 시끄러워서 오늘 밤 잠이나 편하게 자겠어요
경찰서도 지금 난리라네요
담아놓은 빗물을 도둑맞았다고 신고가 폭주하고 있대요
빨리 이젠 오시지만 마시고 수습 좀 하세요
이러다 진짜 빗 님의 탓으로 대란이 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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