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아래 ㄷ자
세월의 촉이 얼마나 빠르게 흐느적거리는지
이윽고 10월은 첫날로 밝았다
무지하게도 찌고 덥더니 아랑곳하지 않는
계절의 접전 선을 넘어 여름은 가을 아래 소리 없이 포개어져
빨려 들어가듯 흙 속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가 사라졌다
때가 때인 만큼 날씨는 피부를 스치는 냉기가 되어
점점 없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슬픈 현실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있음이 쌀쌀하게 느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2, 3일 전 플라타너스 아래 이름 모를 사내가
긴 의자에 몸을 눕힌 채 무엇에 놀란 듯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이 옆으로 잔뜩 몸을 세우고
말굽자석을 닮아가는 양 새우잠에 깊이 취해 있었다
그 사내의 모습이 눈에 아른아른 피어오른다
그나마 아직은 초가을이라
다행이지만 이미 시작된 본격적인 가을이 활동을 펴면
낮이고 밤이고 추워서 잠자리를 찾아 헤매는 일과가 생활의
전부가 될 터인데 마음이 씁쓸하게 요동을 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조할 때 어떤 혼을 불어넣었을까?
플라타너스 아래 ㄷ자 형상의 사내가 찾아가야 할
한글의 운명은 어떤 것일까?
이미 ㄷ자를 생활의 언어로 풍긴 그 사내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네 삶은
언제나 사람 가슴을 절박하게 조이는 운명이니
돌연 세상사에 짓눌려 들쑥날쑥 마치 펄렁이는 깃발처럼
날리는 것이 사람이 간사함과 같은데 그 누가 삶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 사람아!
이제 헛되이 더는 움직이지 말고
한글을 창조한 세종대왕의 혼으로 깃들어 있는
당신임을 깨달아 죽으면 죽으리라
한글의 혼을 따라 삶의 긍정적인 대명사
ㄷ으로 인간답게 다 이루기만을 진정 바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