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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그 영감에 대해서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0538 등록일: 2010-09-29
그 영감에 대해서
 
항상 그 영감을 보면 만삭 된 여인처럼 배가 나와 있었다
옷 속에는 무엇을 넣고 다니는지 울퉁불퉁 모가 난 자국들로
잔뜩 얼룩이 선명하게 돋아있다
처음 그 영감을 보았을 때 나는 궁금했었다
도대체 왜 저 사람은 옷 속 그것도 뱃속에 무엇을 넣고 다닐까
왜 이해가 가지 않는 품새를 하고 다닐까
그러다 나는 또 어느 날엔가 누군가에게서
그 영감의 대해서 들었다
영감의 배가 늘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돈이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은행에 맡기는데 영감은 세상을 하도 못 믿어서
집에다 놓지도 못하고 은행에 맡기지도 못하고
그렇게 늘 옷 속에 돈을 지니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럼 더 위험할 텐데요 생명까지도 부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를 다 알기 때문에 칼을 들이대거나
빼앗거나 탐하는 사람 없이 다들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기막히기도 했지만
그곳 사람들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영감을 그렇게 만든
그만의 가슴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연이 홀로 존재하는 상처의 흔적인가 싶기도 했다
영감은 여름에도 그 더운 날씨에 긴 팔을 입고 다녔으며
심지어는 봄 가을에 입는 긴 팔 잠바를 단단히 잠가 입고 다녔다
그리고 절대로 어디에 가서든지 웃옷을 벗는 일도 없었다
한번은 어딘가에서 낮잠을 자는데 영감의 옷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돈이라는 것을 알고는 빼 가려 하다 그만 실패하고 도망간 일이
있었다고들 수군거렸다
영감의 무모함 때문인지 세상의 과욕 때문인지
한 사람의 세상살이는 참으로 한쪽 구석에서 힘들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영감은 봄,여름,가을,겨울할것 없이 늘 잠바에 자크가 단단하게 채워져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하게 더위가 치밀어오게 하는 여름이었다
그는 인제야 제철 만나 제대로 입을 입고 다니고 있다
영감은 오늘도 흔들흔들 역전을 질척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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