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문법이란?
어느 누가 작품을 쓰더라도 그 글은 생명을 나타내어야 한다 물론 살아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 자신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자연과 부대끼고 세상에서 사람들과 삐걱거리며 깨닫기도 하고 밀고 당기는 삶은 놓고 이루어지는 일상을 대들보로 삼아야 한다 이럴 때 글은 산 경험에서 나오는 힘을 내뿜으며 독자들을 향해 삶의 지혜와 융통성을 발휘하며 길이 되어 줄 것이다 막연한 추상적 기법으로는 상상의 나래만 제시해줄 뿐 생명 즉 소망 혹은 희망으로 독자의 마음을 두드리지 못하고 돌밭에 뿌린 씨앗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금방 사그라져 읽은 후에도 도대체 자신이 무슨 책을 읽었으며 어떤 글을 느꼈는지 작가의 어떤 철학을 엿보았는지 어떤 새로운 지식을 전달받았는지 생각나는 것이 없고 기억에 남는 것이 전혀 없다 쉽게 말하면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주로 책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독자는 수많은 볼거리를 쉽게 만난다 이제 앞으로는 책은 사라지고 인터넷을 통한 작가와의 만남이 더 큰 자리매김을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문학예술은 다른 예술분야와는 달리 정부에서조차도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면서 소외당하고 있다 스포츠분야는 올림픽과 국제대회를 통해 국위선양을 하면서 정부의 많은 투자와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문학은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문학의 불모지는 없을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 나라에 수많은 문단이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열악한 재정문제와 여건 속에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개의 문단이 반짝 탄생하고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짧은 삶을 달리하면서도 그저 관심 밖의 사건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예지와 동인지 문학지를 발행하거나 등단비와 가입비 등으로 유지하면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를 궁여지책으로 삼아 하루하루 견디고 있다 어렵게 사단법인으로 설립하더라도 비영리로 만들어져 수익 없는 비영리사업을 하다 보니 결국 무너지는 경우가 많으며 수익을 얻기 위해 사업성을 띠기도 한다. 이 결과로 작가들은 수입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고 가정이 깨어지는가 하면 삶의 무게를 지탱한다는 것이 고통의 연속이다 문단이 가난하고 재정이 열악하다 보니 원고료도 제대로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가난에 노예처럼 묶여 허덕이는 세상의 광대 노릇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땅의 작가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부업으로 작품을 쓰고 있다 생계를 책임지고 낮에는 생존경쟁에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고 퇴근 후에 생기는 자투리 시간을 겨우 갈라 작품을 쓰기 위해 직장 동료끼리의 약속이나 모임에도 마음 놓고 참석해 즐기지 못하고 작품 집필을 위해 외톨이를 자처하면서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살핀다 이렇게 간신히 빠져나오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된 작업실이 하나 없어 직장의 사무실에서 집필하거나 혹은 집으로 달려가지만 집에서조차 가족의 외면하고 아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아내와 따뜻한 차 한잔 나누지 못하는 오히려 시간에 쫓겨 서재에 틀어박혀 집필에 몰두하는 인기 없는 가장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래도 집에 서재라도 있으면 다행이지 그것도 없어 안방에서 아내에게 바가지 긁히면서 작품을 집필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장에서 쫓기고 가정에서조차도 가족에게 시달리며 싸우며 작품을 잉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작품활동을 하는 수십 개에 달하는 광대한 불량으로 가입한 각 인터넷 카페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행사를 알리는 단체의 공지 쪽지나 카페 활성화를 위해서 올라온 많은 글에 많은 관심과 아울러 댓글을 달고 답글을 달아달라 독촉하는 내용에 정모나 등산 문학 기행 등을 독촉하는 쪽지를 받는다 심지어 카페 등급 상향조정에서 밀려나 특별회원에서 정회원이 된다 자신의 전공을 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부업으로 돌린 채 엉뚱한 일을 생업으로 갖고 땀 흘리며 살아가고 있다 낮에는 육체노동에 시달리고 밤에는 정신노동에 성실해야 하는 슬픈 현실이다 슈퍼맨도 아니고 무쇠도 아니건만 먹고 사는 문제와 자신의 작품활동을 통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날리고 자신의 꿈을 힘겹게 이루어내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이제 한국문학도 작가가 생업이고 수입이 있어 마음 놓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날이 속히 오기만을 기다린다 이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문학의 발전은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문학은 졸작이 될 수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노벨문학상에 도저히 접근해갈 수도 없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남을 것이다 이 땅의 작가는 불쌍하다 생업과 문학작품활동을 겸하면서도 가정사에서는 무능한 가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 작가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끝내 몸이 다 부서지는 지병까지 얻어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 비싼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큰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 한 번 받아보지도 못하고 사회의 무관심과 소외된 삶을 마감 한다 이름없는 문학인으로서 꿈도 날개도 다 펼쳐보지 못하고 애석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인터넷 카페의 활성화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터넷 카페의 활성화도 좋지만, 뭔가 현실을 잊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 가입한 회원들은 물론이고 운영자나 카페지기 자신도 생업이 있고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삶의 영역이 있다 특히 오늘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아니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쁜 삶이다 직장생활에 가정생활에 직업에 부업에 맞벌이 등등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윤택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여가 활동으로 혹은 취미생활에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카페지기로 일반 운영자로 그 참여가 쉽지만 어디 요즘처럼 나라의 경제가 어렵고 가정의 경제가 어려운데 어떻게 자신의 가정과 생계를 팽개치고 여유 있는 인터넷 카페참여를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어떤 인터넷 카페는 카페지기 자신조차도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자주 들어오지도 못하고 운영하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왜 이런 현실을 모르는가? 특히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여 다듬어 올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투자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짐을 더해 하나 두 개도 아니고 어떻게 가입된 카페마다 들러 읽는 글마다 댓글을 달고 답글을 단단 말인가? 어떻게 보면 굶어 죽으라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작가는 인터넷 카페 회원에게 볼거리 제공하는 봉사로서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월급쟁이도 아니며 사업장의 종사자도 아니다 오히려 독자는 없고 작가만 있어 작가들만의 초라한 잔치가 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많은 인터넷 카페들이 허와 실을 함께 추구하면서 애매하게 회원 즉 작가를 괴롭히고 있다 원래 작품을 보는 이들이 작품을 충분히 읽고 순수한 독자로서 댓글을 달아주어야 하지만 어디 보통 문 외 인이 한두 번 읽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작품은 없다 몇 번씩을 읽어봐야 겨우 이해하게 되고 댓글을 달수 있는데 생계가 우선인지라 이런 인터넷 독자확보가 어려우며 댓글도 달아본 사람이 달지 아무나 달지 못한다 이런 문제점이 있어 결국 만만한 것이 작가가 된다 왜냐하면 작품을 올리려면 자주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게 되고 카페 창을 통해 카페지기나 운영자들 눈에 쉽게 띄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작가는 더는 공부하고 정진하며 배울 기회를 고스란히 다 놓치고 있다 작가도 평생 수련하고 배우고 익히며 다른 사람의 좋은 작품을 돌아보고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 이러한 이중고를 당하면서 요즘 인터넷 카페의 무리한 활성화 속에서 댓글에 답글을 요구당하는가 하면 등급향상에 차등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당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어느 작가든지 오래가지 못하거나 끝까지 간다 하더라도 평생 생계와 글을 놓고 갈등하며 좋은 글에 몸 사리지 않고 열정을 불사르다 끝내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홀로 지쳐 병을 얻어 쓰러지거나 좋은 글 한번 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작가로서의 삶을 접고 실패와 좌절에 휩쓸려 포기한 채 생업 전선으로 돌아서는 아픈 현실이다 시 한 편의 탄생은 최소한 한 달 혹은 몇 달 몇 년을 거쳐 비로소 한 작품이 좋은 작품으로 세상에 빛을 본다. 쓰고 또 쓰고 다시 쓰면서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시대를 사는 암울하고 희망을 잃어가는 많은 서민과 약하고 없는 자들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앞으로의 희망을 세워줄까 몇 날 며칠을 고뇌하며 정신구원이라는 목표 아래 노력하고 온 힘을 다하지만, 현실은 벽이 되어 자꾸만 두꺼워지고 높아져 작가의 생업과 작가의 길이라는 두 가지 생각으로 신경을 사로잡아 두 집 살림으로 찢어 놓고 있다 이렇다 보니 말이 작가이지 제대로 된 문학작품을 한 편 진지하게 읽고 충분한 시간 동안 접하면서 은근히 문법 문장 어구 어법 표현과 시어에 대한 연구와 공부 배움과 터득 그리고 살아 있는 글의 탈고는 도통 엄두를 못 내게 하고 있다 결국 좋은 작가 좋은 글은 이 사회에서 멀어지고 졸작들만이 생산하는 가슴 아픈 상처를 작가에게 고스란히 그 책임과 함께 문학에 대한 안 좋은 비평과 따가운 눈초리 그리고 정부와 많은 사람의 무관심만 사고 있다 24시간 동안 생업 즉 본업과 부업으로 시간을 나누고 쪼개어 놓고 두 마리의 토끼를 쫓듯 안정감 없는 아주 불투명하고 불안한 미래 없는 생활에 작가는 시달리고 지치고 쌓이는 가난에 허덕이다 어느 날인가 갑자기 못 살겠다. 깨끗이 두 손들고 무대에서 내려와 사라져야 하는 고통 가운데 있다 이러다 보니 전문작가의 양성은 뒷전이 되고 무관심이 되어 혼자 웃고 울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두 가지의 일을 생각하며 챙기다 보니 작품에 열중하고 집중하며 다듬고 살펴가면서 작품에 쏟을 여지는 더더욱 없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서 새벽까지 작품을 쓰고 밤잠 설치고 다시 생업의 현장으로 내몰리면서 시집 낼 300만 원이 없어 인터넷 카페에 작품을 올려 독자들을 겨냥해보지만 이도 녹녹하지는 않다 보통 작가가 가입한 인터넷 카페는 수십 개 혹은 백 개를 넘긴다 그런데 날이면 날마다 댓글을 강요하거나 요구하는 쪽지가 날아들고 답글에 무슨 방에 들러 흔적을 남겨 달라는 수많은 쪽지를 접한다 작품을 쓰고 올리는 것은 작가의 몫이라 할 수 있지만 인터넷 카페의 모든 회원이 많은 독자로서 댓글을 달아주면 좋으련만 어디 우리네 일상과 삶이 그리 단순하던가 먹고 살기도 바쁜데 누가 인터넷 카페에 들어와 작품을 깊게 읽고 느껴 성심성의껏 댓글을 달아주겠으며 심지어 운영자 카페지기조차도 보기 드문 인터넷 카페가 있을 정도로 사느냐 죽느냐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불꽃 튀는 생존경쟁은 날로 심해지고 모든 이들은 현실에 적응하느라 책 읽을 시간도 없이 직업전선에 충실하다. 잠시 머리 식히려 인터넷 카페를 들러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카페지기는 운영자에게 댓글 달라 괴롭히고 운영자는 글을 많이 올리면서 자주 눈에 띄는 작가들에게 서로의 작품에 관심을 두고 댓글을 달라 한다. 물론 댓글도 달아본 사람이 다는 것이며 댓글 하나를 달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을 투자해서 한 작품에 몰두해 읽어야 한다 이런 여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작가의 작품을 읽고 댓글을 달 정도로 이해하는 독자는 얼마나 될까?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또한 서로 작가들끼리의 교제가 활성화된다 하더라도 이는 분명히 독자 없는 작가 자신들만의 잔치에 불과할 것이며 문학의 폭을 넓혀 인터넷상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작가 개인적으로 공부할 많은 시간을 빼앗아 감으로써 생업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을 쓰는데 하루 대 여섯 시간 투자하고 이도 부족해서 수십 개의 각 카페를 돌면서 댓글에 답글을 달려면 그 시간은 하루를 다 잡아먹으며 결과적으로 생업을 팽개치고 오직 인터넷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누가 작가가 인터넷 카페에 글 올렸다고 월급 주는가? 아니며 성과급을 주는가?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글을 썼다고 다 끝나는가? 다시 다듬고 시상을 떠올려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시일을 맞추어 문단에 원고를 보내고 각 문단에서 언제 어떻게 청탁 원고가 있을지 몰라 늘 메일에 쪽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할 시간에 인터넷 카페에 더 이상의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다. 각 문단의 활동도 요즘은 인터넷 카페와 메일 쪽지 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가는 인터넷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각 문단에 행사나 공지 방에 수시로 들락거린다 이런 실정에 정신 집중을 하고 작품을 쓰고 있으면 아니 쓸만하면 꼭 여기저기 인터넷 카페에서 공지나 무엇을 부탁하는 쪽지들이 날아들어 혜안을 흐리게 하고 생각을 빼앗아 가는가 하면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출판기념회는 왜 그리 많은지 참석하라고 보내는 쪽지에 시간과 장소 등을 공지하는 글들이 날아온다 이렇다 보니 작가는 결국 많은 카페를 정리하고 쪽지 수신 거부를 설정하는 등에 자구책 마련에 들어가 집필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스스로 만들어가게 된다 이런저런 일로 작가의 마음은 두 집 살림을 하듯 작품에 마음을 두고 인터넷 활동과 생계에 다시 마음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정신적 노동과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고 댓글에 답글에 한 줄 인사에 등등 봉사활동까지 겸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작가의 현실 앞에 많은 생각을 했다 등단이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등단하는 것보다 등단 이후의 관리와 활동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공부와 정진이 필요하다고 정말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그런데 여기에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스승이 없다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문단에서 전문 교육해주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 문학학원이나 문법학원이 있어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어떻게 산 글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 된다 이 땅에 시인 소설가 수필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길을 걷다 발에 걸리는 것이 문인이다 어느 작가가 말했듯이 인터넷 여기저기를 다니며 도움이 되고 스승이 될 수 있는 작품과 작가를 찾아 글을 접해보지만, 그저 밋밋하고 지루하게 서술된 글이 많고 읽고 되돌아서면 도대체 무슨 책을 보았는지 무슨 내용인지 무엇하나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는 극히 평범하면서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건에 글의 형식을 갖추고 있을 뿐 정말 이 시대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의 마음을 대변하고 보듬어 주며 가려운 곳을 찾아 긁어주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주관적인 글에서 작가 자신만의 심오한 세계를 그려내느라 과연 독자가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정말 약자의 삶에 진솔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마음으로 함께 나누고 같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면서 자꾸만 퇴색되어 가는 꿈과 소망으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며 정신구원을 이룰 수 있을까? 기독교 성경을 통해 나는 영혼구원을 얻었듯 이제 이 땅의 문학을 통해 정신구원을 이루고자 한다 문학에는 정신이 있으며 구원이 있다 이 해답을 성경에서 찾고자 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 1 : 2) 이 구절에서 나는 내 정신의 구원을 맛본다. 사랑하는 자의 영혼이 잘 된 것 같이 또한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절히 구하는 그의 영혼까지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의 영혼이 잘 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절히 구하는 이 마음은 사랑하는 자의 영혼과 더불어 그가 모든 하는 일과 아울러 건강하기를 바라는 3가지 축복을 빌어주고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도 잘 되고 이왕이면 영육간에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 구원이다 더 압축해서 말한다면 영육간의 강건함, 즉 건강하라는 말일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얼마나 멋진 말인가? 주 예수를 믿으면 나뿐 아니라 내 집 전체가 구원을 얻는다는 소망의 메시지 이것이 구원이다 영혼구원 즉 정신을 구원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요한복음 3장 16절)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거저 값없이 주시는 영혼구원을 영생으로 약속하신 언약의 말씀을 생명으로 전하고 있다 오늘날 점점 사랑은 식어가고 정은 메말라 서로 다투고 싸우고 이간질하며 서로 밟고 올라가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으며 물질 만능에 빠져 무엇이 영육간에 강건한 것인지 조차도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류에게 이 땅의 작가는 오직 한 가지 점점 잃어가는 인간성을 회복하고 사랑을 꿈꾸며 실천하는 인간다운 삶을 재현할 수 있는 정신적인 구원을 바탕으로 작품을 써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신의 문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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