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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
고물에 잡혀간 남자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0029 등록일: 2011-07-04
고물에 잡혀간 남자

 海月 정선규

6월의 감자가 골목에서
익던 날
이글이글 잘 빠지는
더위에 미끄러지는
손수레를 끌고 흐물흐물
그 남자가 스며든다

대전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가
눈에 선한 것처럼 한 집 건너 한 집이
벌어져 틈바귀를 이루고 있는 종이 상자가
요물주물 억지 춘향으로 한입에 모금은 듯
심한 옹 이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성 싶은
형상을 갖추었다

선화동을 벗어나
중촌동 네거리의 현대칼라에서
속을 다 토한 하얀 화공약품 물랭이 통에
빈 종이 상자를 취하고
지하로 내려가 칼에 쭉쭉 나간
뻣뻣한 종잇조각을 주섬주섬 묶어 들인다

잠시 남자는 멈칫한다
이렇게 해서 돈이 될까
종이만 다독인다고
돈이 가파르게 쌓일까?
뒷맛이 영 찝찝하면서 석연치 않다

속 끓이듯 뽀글뽀글 가슴앓이는
움직이고
머릿속으로 큰 거미가 지나간다
촘촘한 거미줄은 팽배하게 과녁처럼
뚜렷하게 그려지고
발판 철사 서식 철근 핀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초롱초롱 빛을 토하면서
서서히 서쪽 하늘에서
그 남자 데려감을 생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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