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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개와 주인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9894 등록일: 2011-06-06
개와 주인

우리 동네에 개를 키우는 집이 있는데
그 집은 하루가 멀다고 개 짖는 소리로 시끌벅적입니다
바로 우리 집 옆집인데 대낮부터 요란하게 개 짖는 소리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어 한마디 하려고 나갈까 말까
망설이다 보면 밖에서 이런 말이 들립니다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올여름에 너 된장 바른다."
이놈이 말귀는 밝은지 이때부터는 아주 얌전하게
잘 있습니다
하지만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채 3분도 안 되어 다시 짖기 시작합니다
대문 밖에서 발걸음 소리만 나면
사족을 못 쓰고 짖습니다
그래서
제 주인은 이놈 이름을 금순이라 지었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물불 가리지 않고 굳세게
짖어대기 때문에 지어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하여튼 넘친다는 것
넘친다는 것은 모두가 푼수인가 봅니다
왜냐하면
금순 이가 말입니다
겉보기에는 야무지고 똑똑하다 싶은데
제 주인이 집안에서 왔다갔다하든
뛰어다니든 기어 다니든 소리를 지르든
하여간 가만히 입에 문 내리고 잘 있다가도
담배가 떨어졌다 싶어서
제 주인이 잠깐 밖에 나갔다. 오면
이건 난리가 납니다
정말이지
육탄전을 방불케 하는 전쟁이 일어납니다
제 주인을 알아보는 것인지 못 알아보는 것인지
입에 거품을 물고 온 동네가 다 떠나갈 정도로
짖는데 그냥 짖는 것이 아니라 잘 보면
사람이 무엇인가 억울한 일이 있어 신문고를 치고
대궐 앞에 납작 엎드려 억울하다고 부르짖듯
그렇게 젖먹던 힘까지 더 동원해서 눈알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인정사정없이 짖고 또 짖습니다
그럼 주인은 또 말의 일 번지가 등장합니다
"너 된장 발라버린다."
속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염불 외우듯 하니까
이제는 들은 척도 않고 짖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주인이 조언을 바꾸어 말하는 듯이
그럴싸하게 사정하다시피
"야! 이 집이 네 집인 줄 알아
내 집이야. 인마
따라서 이 집주인 또한 나야 네가 아니란 말이야
이 대 푼수야
알았지
이제 너 한 번만 더 짖어도 그건 내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월권 하는 것이다
알았나"
쾅 큰소리쳤습니다
매일 치르는 전쟁이지만 보면 볼수록
정말 누가 주인이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금순 이의 이런 행동은 주인에 대한 불공평한 처우에
저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주인은 한 번도 금순 이를 풀어놓거나
밖에 데리고 나갈 줄 모르는 푼수인지 모르겠습니다
푼수푼수 보태다 보니 어느새 두 푼수가 되었습니다
뭐가 두 푼인지 모르겠지만 둘의 하루 전쟁에 대한
일당이라 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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