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 보면 간혹 누구한테 열쇠를 전해주어야 하는데 연락할 방법도 없고 그쪽에서 연락받을 방법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온종일 집만 지키고 있을 수도 없고 어딘가에 열쇠를 두고 나가자니 평소 두 사람 중에 누가 먼저 나가든지나갈 때는 열쇠를 어디에 놓고 나가겠다 하는 약속이 없었으니아무리 열쇠를 놓고 나간다고 해도 상대방은 알지 못해 찾을 수 없고 끝내 밖에서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데 이 이야기는 내가 스물한 살 때 일입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손전화라는 것이 없었고 공중전화나 집 전화가 전부였습니다 지금은 아마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되는데 서울 성동구 마장동 형제흑판에서 먹고 자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야 겨우 4~5명이었고 매주 일요일이면 쉬는 날인데 마침 그날이 일요일이었습니다 보통 쉬는 날이면 온 종일 텔레비전을 보면서 보내거나 아니면 서넛이 어울려 왕십리나 행당동 답십리 쪽으로 나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아니면 경기도 하남에서 사시던 직장선배님 집에 놀러 가 아이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놀아주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때 매주 일요일이면 직장 상사의 집이나 직장 친구네 집을 번갈아가며 주례행사처럼 드나들었습니다 시내라고 해봐야 남대문시장을 둘러 남산으로 휘돌아 올라갔습니다 왜 그렇게 사내들이 옷 욕심이 많은지 나갈 적마다 옷 한 벌씩 건져들 이곤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사총사. 오 총사가 되어 떼 지어 다니며 놀았기 때문에 여분의 열쇠를 달리 가지고 있었을 리 없었고 또한 그럴 필요성도 못 느끼고 그저 그렇게 무난하게 지냈는데 이날은 몸살이 났는지 못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꼼짝없이 온 종일 하루 승진에 지나지 않는 기숙사 지기가 되어 숙소를 지켜야 하는 아주 처량한 처지가 되었고 잠시 후 다 나간 후 이제 혼자 좀 편히 쉬겠다 싶으니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여보세요. 형제흑판입니다" 하고 전화를 받았더니 고향에서 몇 년간 교회 다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못 나가는가 싶은 조급한 마음으로 지난주 등록한 예인교회 전도사님인데 오늘 꼭 교회 나오라고 재촉하는 전화였습니다 당시 나는 마전감리교회 시무 전도사님으로 계시던 홍현선 전도사님 소개로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있는 형제흑판에 입사했으며 형제흑판 홍정숙 사장님은 홍현선 전도사님의 고모로서 이미 금호동 모 교회 집사님이셨기에 될 수 있으면 그 교회에 등록해 다녀 보고도 싶었지만 신앙생활까지 간섭받거나 강요받을까 하는 노파심에 나름대로 다른 교회를 알아본 것이었습니다 내 발로 스스로 찾아가 등록하고 한주도 지나지 않아서 못 나갑니다. 할 수도 없고 난처한 처지에선지라 "예. 잘 알겠습니다." 냉큼 마당쇠처럼 대답했더니만 웬걸 열쇠 생각이 났습니다 열쇠는 단 하나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데 친구들이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도 없이 열쇠 가지고 잠적해버리면 기분 좋게 놀고 돌아와 열쇠가 없어 못 들어온다 이건 말도 안 되지. 하는 고민으로 초읽기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면 되지. 어떻게 하면 되지. 아무 데나 덩그러니 놓고 간다면 내가 나간 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우연이든 필연이든 볼일이 있어 아무도 없을 때 들어와 열쇠를 본다면 그리고 주인의 허락 없이 덜커덩 현관문을 힘껏 젖히고 들어온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꼭꼭 숨겨놓으면 나중에 친구들이 열쇠를 못 찾아서라도 못 들어올 것이고" 고민 끝에 드디어 한 가지 묘책이 떠올랐습니다 현관 앞 창틀에 열쇠를 살며시 놓고 욕을 메모한 종이를 쉽게 눈에 띄게 덮어 놓으면 열쇠가 보이지 않게 덮은 다음 매직으로 큼직하게 써 놓았습니다 "xxx 무디기 모야 모야" 신 나게 쌍소리를 적어냈습니다 그럼 친구들이 돌아와서 봤을 때 화가 머리끝까지 미치도록 치솟아 바짝 약 오를 것이고 순간 종잇조각은 발로 차버리든가 아니면 찢어버리든가 아무튼 거친 반응이 나오면서 열쇠를 볼 것이라는 예측 아래 그렇게 해놓고 교회를 갔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교회에서 모든 예배를 모두 마치고 돌아오니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다들 기숙사에 들어와 늘어지게 자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물어보니 예측이 적중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다들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며 마구 날뛰다가 성질 못 이겨 종이를 집어들고 찢다 보니 열쇠가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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