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많아 말도 많았던 고교 시절 우리 동네에서 가장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말은 없어도 늘 무엇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신중파였습니다 그날도 그 성격 어디에 갔다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우리 집으로 놀러 왔습니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는 아무 말 없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뭔가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듯 표정이 진지하면서 우물처럼 깊어 보였습니다 굳이 꼬집어 말한다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살리는 영이라고 할까요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그 모습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잘 보존시켜 단단한 뼈대를 갖춰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처상이 거듭나는가 싶어지는 착각 할 정도였는데 드디어 후배는 도의 경지에서 깨어나 입을 열었습니다 "형" "왜" "사람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매일 방에만 누워만 있는 사람과 형하고 나처럼 일어났다 앉았다 운동도 하고 먹기도 하면서 활동하는 사람과 어느 쪽이 키가 더 클 것으로 생각해" 나는 암담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본 일이 없는 황당한 질문을 받다니 말문이 막히다 못해 숨통이 조여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에서 짜증을 내면 그렇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만 골라서 한다고 핀잔을 듣는데 나까지 그러면 녀석이 엇나가거나 삐뚤어질 것 같다는 막연하게 번져오는 마음에 잠시나마 문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방안에만 누워 있는 사람이라면 햇빛을 제대로 못 보는데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평생을 누워만 있었다면 그 사람의 키는 활동하는 사람에 비해서 더 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은 몰라도 항상 사람이 누워서만 지낸다면 운동을 하거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에 비해서 위에서 누르는 공기의 압력을 온몸으로 그대로 받기 때문에 더 늘어날 것이고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은 누워만 있는 사람에 비해서 서 있는 시간이 누워있는 사람에 비해 비교적 많아서 공기의 압력을 서서 받으므로 오히려 자라는 키에 압력을 가하는 방해를 받는다고 보고 누워서만 지내는 사람의 키가 더 크겠다고 말했더니 후배는 놀라면서 덧붙였습니다 "형 나도 그렇게 생각해 또 한가지 우리처럼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꾸 움직이기 때문에 키가 마음 놓고 자랄 수가 없는 것이야 클 만하면 걷다 달리다 앉았다 움직이면 흔들려서 제대로 크지 못하는 거야"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무조건 후배 편을 들어주면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습니다 "그렇구나! 나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네가 생각하고 있었구나 너 나중에 과학자 되라 잘하겠다. 참 너 머리 좋다" 그때야 후배는 말했습니다 "우리 사촌 형한테 이런 내 생각을 말했더니 아니래 멍청한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내 말이 맞네." 그날 우리는 우리 집에서 합숙하면서 밤잠을 설치면서 나누었고 눈퉁이가 밤 퉁이 되어 지각사태까지 갔었던 추억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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