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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사람도 별수 없네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9921 등록일: 2011-04-01
사람도 별수 없네

얼마 전 늙은 총각 살림살이 하나 어떻게 좀 보내볼까?
싶은 마음에 길을 떠나 대전 중앙시장으로 들어서는데
저만치 50m 앞에서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진짜 시장바닥이라는 실감을 불어넣듯
엄마 손 꼭 붙든 꼬마와
우리 옆집 할아버지 같은 이름 모를 할아버지가 보이더니
어제 지하철에서 보았던 핀 아주머니까지 다 보였습니다
무슨 일일까?
벌써 궁금증이 까슬까슬하게 배인 마음은 꼭 이곳에 가시를
털어놓고 가야만 개운할 듯 서서히 상황이 살짝 토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확 하고 전환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이건 아닌데 김치통 사려면 다음 골목에서 꺾어 들어가야
하는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더니만
내가 그 짝이네. 아! 이식을 줄 모르는 인기에 팔려 오늘도
늦장 부리는구나!"
중얼중얼 콩알만 한 봄비를 먹구름 탈곡해
하얀 구름 꽃만 빼내는 마법에 사로잡힌 채 사람들
틈바귀에 끼어들었습니다
겨우 들어가 보니 연꽃 씨앗을 한약재로 소개하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고 바로 옆에 작은 원숭이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아저씨는 연꽃 씨앗이 사람 몸에 그렇게 좋다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좋은 효과를 보이며 널리 많이 쓰이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연꽃 씨앗을 한 움큼 집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원숭이에게 연꽃 씨앗을
한 움큼 쥐여주더니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숭이는 제법 사람 말을 고상하게 알아듣는지 
말도 안 하고
달라고 손 내미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손을 내밀었는데
연꽃 씨앗은 주지 않고 냅다 손을 뿌리쳤습니다
나는 오기가 나서 다시 손을 내밀었더니 이번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깨물려고 안달하고 덤벼들었고
덕분에 하마터면 물릴 뻔했으나 위기는 잘 넘어갔습니다
나는 얼굴에 홍당무 빛으로 억세게 눌려 아픈 표정을 지으며
애써 항의인지 물어보는 것인지
말했습니다
"아저씨 얘도 사람을 알아보는가 보네요
내가 여자라도 이럴까요"
아저씨는 껄껄껄 웃으시며 말했습니다
"아저씨 얘는 거친 남자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아요"
시장바닥은 껄껄껄 킥킥킥 까르르 만발하는 웃음꽃은
지방의 백여 가지 방언으로 까무러쳤습니다
망신! 망신! 이런 망신이 원숭이 그것도 여자에게 딱지를
맞다니
조직의 쓴맛은 보았어도 원숭이의 쓴맛은 정말 처음이었으니
때로는 사람도 별수 없구나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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