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3월 말이니까 곧 4월이 오고 박 장로님 농장은 올봄에도 변함없는 사과 꽃이 하얗게 만발하여 눈부시게 떨어져 화창한 날 포근한 흙 덮게 되어 모자이크 처리하는 작품 이루는 극의 절정에 몸달아 어찌할꼬 숨가빠오는 마음의 절규가 앞섭니다 4~5년 전의 일이지 추억이 지난겨울 이야기처럼 아주 가까이 머물러옵니다. 그해 4월 말쯤 논산 가나안농장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박 장로님 말씀에 우리 구역에서 몇몇 사람들이 돕고자 하여 나섰습니다 물론 각 남선교회와 기관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가나안 농장에 가서 돕는 것이 교회의 큰 보람이었습니다 나는 아르바이트한다 생각하고 아침부터 날씨도 흐려 꼭 비가 내릴 것 같은 그래서 일을 못 하지 싶은 염려와 함께 길을 떠나 논산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고 날씨는 점점 개었습니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나는 유난히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농사일 안 시키겠다는 부모님 가치관에 감자 한 번 심어본 일 없이 귀하게만 커서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였습니다 덕분에 사다리를 놓고 사과나무를 돌아나가며 꽃을 솎아내는 일은 절로 재미가 솔솔 맺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매력에 빠져 갈 때에 마침 그 동네 사시는 할머니 몇 분이 오셔서 일하셨습니다 우리끼리만 일 할 때에는 별 할 이야기도 없고 심심하면서 무덤덤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는데 할머니들이 오시니까 분위기는 살아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게 중에 친밀감이 가면서 아무 거리낌 없이 내게 말을 전해오는 분이 계셨습니다 "총각 어디서 왔어." "예 할머니 대전에서 왔습니다" "대전, 대전이 집이야." "예 할머니 집은 대전입니다." "원래 대전이 고향이야." "아니요 고향은 금산이고요 지금 사는 곳이 대전입니다." "총각, 결혼은 했어." "아니요." "왜 절대 남자는 혼자 못 살아" "그러게요 하하하" 할머니와 나는 온 종일 생기 넘쳐 탐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며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거의 일이 다 끝나갈 무렵 할머니는 살짝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권사님께 사과 좀 달라고 해 작년 사과 아직 많이 있을 거야 꼭꼭 싸서 마누라 갖다 줘 그래야 밥상이 푸짐하게 올라와." 나는 할머니 얼굴을 바라보며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 마누라 없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꾸준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는 걸 보면 틀림없이 마누라가 있어. 사과 마누라 갖다 줘" 나는 할머니께서 이 그러실까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왜 제가 마누라 있다고 생각하세요." "예쁜 짓을 많이 하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마누라 없는 사내들은 외롭고 쓸쓸함이 묻어나는 뻔해 홀아비 생활에 재미도 없고 흥도 돋을 기미 없이 밋밋하기만 한데 점심때 내가 자네를 눈여겨보았더니 설거지도 예쁘게 잘하는 것이 애처가 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 하면 거짓말이 되고 아니라고 하면 믿지 않으니 그냥 말없이 세월에 맡겨두기로 했습니다 "역시 우리 할머니 멋쟁이십니다 미래까지 다 아시고 그렇지요 할머니" 이제 할머니의 생각은 내 마음의 희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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