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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밤 따는 남자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9937 등록일: 2011-03-21
밤 따는 사람

3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이 있듯
우리는 한 가지 버릇을 다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버릇의 모형만 다를 뿐입니다
종이 한 장 차이의 삶이라는
오묘하게 더해주는 감성을 맛봅니다
여기 이 아저씨가 가진 버릇은
계절성 알레르기 같은 것으로
봄 여름에는 "영구 없다." 숨었다 가을이 오면
어느새 낙엽 지우며 뒤따라 왔는지 나를 아저씨로 잘못 알고
내 왼쪽 어깨 능선 위의 넘실거대는 혀의 바다에서
시원한 파도소리 죽여놓고 느끼한 억양만 살려 굴리면서
"나야" 하고 아는 체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옵니다
내 안의 아저씨, 또는 아저씨 안의 나로 서로
영적인 통로가 되는 것 같을 때마다 닭살이 내 몸에 돋습니다
이러다가 언제 내 피부를 뚫고 나와 난데없이 "까꿍" 하고
그분이 오실까 몰라 전전긍긍합니다
과연 이게 뭘까요?
현대의학적 표현을 빌린다면 정신질환 또는 몽유병이라 해도
무방하지 싶습니다
가을 그리고 밤이 되면 무슨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뒷산에 밤나무를 타고 올라갑니다
낮에도 안 딴 밤을 새워가며 따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알밤은 가을밤의 형상을 따먹고 자라므로
더 알찬 밤을 따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삶의 철학인지 가능성인지 아무튼 그의 인지도가 백을 초과했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떠올려봅니다
솔직한 삶이란 단 1%만 자신을 인지하여도 인간성을 회복하리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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