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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난 화장실이 싫어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11817 등록일: 2010-12-24
난 화장실이 싫어

어느 공원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올 크리스마스는 꼭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볼일이 마려워서 화장실에 갔는데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키 작다. 소리를 하염없이
내리는 하얀 눈꽃송이 떨어지듯 들어왔는데
내가 여기에 와서 이토록 자신의 키 작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줄이야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화장실이든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는
선반이라고 할까요
물건을 올려놓고 볼일 보라는 배려인지
언제부터인가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문제입니다
볼일 보려고 앞으로 바짝 다가서면
제 턱에 걸리는 것입니다
턱걸이라도 하려는 듯 말입니다
얼마나 불편한지 멀리 떨어져 볼일 보자니
눈물 흘리게 생겼고 바짝 다가서면
턱에 선반을 걸고 허리 휘어야 하니
이러다 화장실 공포증에 걸릴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이걸 실수라고 해야 할지
부실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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