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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3739 등록일: 2023-06-11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 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니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 이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 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시리 이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시편 22:1~3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1~3) 십자가상에서 구원받은 강도의 믿음은 전도할 때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구원받은 강도의 이야기는 죽기 전에 회개하여 그 즉시로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사람은 곧, 바로 구원받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강도의 구원은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또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많이 소개된다. 성도가 때로는 시험에 들기도 하고 혹은 약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구원을, 가지고서도 의심이 생길 때 십자가상에서 구원받은 강도의 이야기를 들어 구원은 자신의 행위와 무관하게 그리스도의 공로로 전가 받는 것이기에 믿고 구원받은 것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먼저 과연 이 같은 가르침에 있어서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인지 그리고 강도의 믿음이 칭의의 구원을 뒷받침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실제로 성경에 나타난 강도의 믿음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그 반대의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39~43) 이 본문에서 강도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을 보고 회개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준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강도에게는 흉악한 사형수로서 얼마든지 죽음 앞에서 보일듯한 폭력적 언사 혹은 악한 감정을 나타낸다거나 또는 세상을 원망하는 등의 극에 달한 공포에 사로잡힌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반면 다른 강도의 잘못된 것을, 꾸짖어 바로 잡는 의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누가복음 23:40) 여기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하는 말에서 그의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과 영적인 일에 대한 주의와 분별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우리는 행한 일에 보응을 받는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라는 말에서 잘 보여지는 것처럼 예수님이 민간에 행한 많은 선한 일들과 아울러 천국 복음에 대한 말씀을 미리 알고 믿는 믿음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자신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천국의 주인이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누가복음 23:42), 이 모습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 의뢰하여 죽음 가운데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로서의 흔들리지 않는 아주 굳은 믿음의 의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메시아 관이라는 것은 메시아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하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연했다. 그런데 메시아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히려 로마의 힘에, 의해 최악의 사형수가 되어 있었으니 이는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아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서 그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같이 욕하더라.”(마태복음 27:39~44) 관원들과 로마 군병들도 다르지는 않았다.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누가복음 23:36~37)라고 소리쳤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점에서 볼 때 로마의 힘에 무력하게 굴복하는 메시아에게 그들의 소망은 없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이스라엘에는 그 누구도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메시아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고소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누가복음 23:1~2) 예수님의 죄 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적었고 이를 보고 유대의 제사장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쓸 것을 요구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요한복음 19:21~22) 그들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하거나 흩어졌고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해서 한결같이 비웃고 희롱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네가 메시아이거든 너부터 구원하라.”라고 이스라엘의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를 하늘의 왕이요, 그리스도라고 말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구원받은 강도는 자신처럼 처참한 죽음을, 당하는 무력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었다. 절대 메시아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 강도는 예수가 하늘의 왕이심을 믿었고 더 나아가 비슷한 죽음의 처지에 놓인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까지 맡겼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강도의 고백은 놀라웠다. 강도는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라고 믿음을 고백했다. 당시 이스라엘이 믿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이 땅에 임하는 것이 아니며 예수의 죽음으로 끝장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계시며 이제 하늘의 왕으로 계실 것임을 바라보았던, 그의 믿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강도는 눈에 보이는 모든 현실을 뛰어넘었고 오직 믿음으로 예수를 바라보았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했다. 이렇게 볼 때 강도의 고백은 오늘의 성도들이 전도의 권유를 통해 믿는 초신자의 영접 고백과는 다르게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무도 메시아라고 믿지 않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뿐만, 아니라 현실을 뛰어넘어 영적인 승리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성경에는 구원받은 강도의 회개 기록이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어느 찬송가에는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라고 했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성경의 그 어디에서도 강도가 회개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강도는 십자가에서 갑작스럽게 회개한 것이 아니었다. 강도는 이미 예수의 복음을 들었고 또한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였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는 상황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강도는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강도의 믿음은 초보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비록 그가 파렴치하고 극악무도하였을지라도 순간적 은총으로 회개하여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호하다. 그는 민란에 관계된 정치범이었고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자에게만 해당하는 십자가형을 받은 자였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예수님도 다르지 않다. 로마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십자가를 받으신 것이었으며, 십자가형을 면한 바라바 또한 로마에 대항하여 민란을 꾸미고 민란 중에 살인한 자에 불과하다.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더니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마가복음 15:6~7) 요즘 시대로 따지면 강도는 민족주의자였으며 또한 애국 투사였을 것이다. 강도는 현세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에 목숨을 걸고 투쟁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다시 예수 안에서 영적인 이스라엘을 소망하게 된 자였다. 오히려 강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밤새 곡성이 울려 퍼질, 때에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라고 담대하게 외치며 온전한 믿음을 가졌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으로 현실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같이 욕하더라.”(마태복음 27:44) 마태는 원래 성경에서 전체적으로 기록하였으며 이와는 달리 누가는 세부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서로 표현의 차이가 있다는 것뿐이다. 누가가 자세히 표현하고 있는 정황을 살펴본다면 강도는 십자가형을 당하기 전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으며 그런 인식이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아라는 어떤 능력이나 이적을 보이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절대 메시아일 리 없는 무력한 모습만을 보이고 계셨다. 그렇다면 과연 강도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믿었을까? 강도는 모든 상황 속에서 회개할 근거보다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욕하고 메시아임을 부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보면 강도는 자신의 현실 앞에서 예수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었던 모든 사실조차도 절망이 되는 순간이었고 모든 것을 잃는 순간이었다. 소망보다는 포기하고 돌아서야 하는 절망이 더 강했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믿기도 힘들고 견디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믿음이었다. 믿음으로 바라보고 분별하는 영의 믿음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순종하는 믿음이었다. 구원받은 강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했다. 이는 참말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정말 성령으로 거듭난 자였다. 강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하늘의 메시아라고 증거 하기 위한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를 위하여 시므온과 안나를 예비하심과 같았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거 하기 위해서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아 죽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가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증거 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 이다 하니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누가복음 2:25~33) 안나는 과부 된 지 팔십사 년 동안 성전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겼다. 그녀도 준비된 믿음으로 아기 예수를 보았고 이 아기에 대하여 증거 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때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 하니라.”(누가복음 2:36~38) 이 두 사람은 성령의 지시를 받아 아기 예수에 대해 증거 한 것처럼, 강도 역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죽음 앞에 계신 메시아를 온전한 믿음으로 증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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