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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피비린내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9964 등록일: 2010-11-18
피비린내

갑자기 피비린내가 생기처럼 코끝에 달린다
끈끈한 피가 섞인 형제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친척인 것 같지도 않은데
옆에 두 사람에게서 피비린내가 코끝에 달린다
인생의 어느 골목 어느 여울목을 다녀왔는지
그들에 대해서 아무도 알지는 못하지만
세상에 피가 당긴다는 핏줄이 아님은
저 창 밖에 내리는 가을비에 중얼중얼 귀신
볍씨 까먹는 재미에 온몸을 기대어 가늠하지
못하는 갈잎처럼 읽힌다
설사 친형제라도 그렇게 서로 믿고 따르기는
유별나다 싶게 두 사람은 우정이 깊었다
"아! 짜증 나 어디 걸릴 놈이 없어 사기꾼 같은
놈에게 걸렸어."
얼마나 흥분했는지 아니 열이 오르는지
빨간 혈색으로 보아하니
금방 실핏줄이라도 터져 빨간 피가 터진 댐 공사하듯
와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은 불안함을 발견한다
장작개비처럼 깡마른 사내에게 덩치가 산만한 사내가 말한다
"내일 경찰한테 전화 오면 잘 받아 멍청이야!"
깡마른 사내는 말이 없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아주 편안하면서도 잔잔한 물결 이는
잠자는 호수처럼 한치의 떨림도 감지되지 않았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깡마른 사내는 모든 것을
저 덩치 큰 사내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맡기고
있는 듯해 보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얼핏 듣자하니
게임을 하면서 아이템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파생되어 나온 문제였다
아이템을 샀는지 팔았는지는 모르지만
상대방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둥
내일 경찰에서 전화 올 것이라는 둥
다 사기꾼들이라는 둥
그쪽에서 먼저 고소를 취하하지 않는 한
아이템을 먼저 돌려주지 말라는 둥
이야기하면서 컴퓨터를 켜놓고 어떻게 된 것인지
사건 경위를 더 알아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것도 내 생각인데 보아하니
일을 당한 당사자는 깡마른 사내로서
덩치 큰 사내에게 도움을 청했거나 자신의 처지를
믿고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덩치 큰 사내가 깡 마른 사내의 손을 자신의 이마로
이끌면서 "만져봐 혈압 올라갔어. xx 놈들 사기꾼들
내일까지 기다려 보자." 했다
진동한다
그들이 내 옆에 앉아 있는 한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한
왜일까?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남의 일은 강 건너 불구경인
세상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성도 이름도 모른 채 만나 말을 섞으며 형 동생으로
살아오다 어느 날 동생이 아이템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자
손발을 걷어붙이고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혈압을 높여가며
상대방에게 날아오는 쪽지와 전화를 본인이라 받아 일일이
대응하는가 하면 경찰서에까지 동행해 붉은 얼굴에 백옥 같은
눈물을 보이며 가슴 아픈 심정으로 세상에 대항하는 사람
참으로 이 시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이다
그는 내게 말한다
"친동생은 아니지만 얘는 내 동생이나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피보다 더 진한 우정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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