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님
바람이 불어온다. 떨어진 낙엽은 멀리 달아나버리고 떨어질 낙엽은 땅을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낙엽들은 언제든지, 떨어질 준비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오늘 같은 날 김치찌개를 끓여 먹어야겠다. 김치찌개에는 묵은 지가 최고인데 없다. 염치불구하고 권 권사님한테 “권사님 묵은 지 주세요” 하고 카톡을 보냈다. 아무 말씀이 없다. “어떻게 된 거지.”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교회에 갔다. 앉아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무심코 바라보니 권 권사님이었다. “묵은 지 달라며 전화번호 적어줘. 내일 어디 좀 가는 길에 갖다 줄게.” 적어드렸다.
이튿날 일찍 전화가 왔다. “정 선규 씨 전화지요?” 나는 직감했다. “네, 권사님 접니다.” “지금 아파트 앞에 와 있으니까 나와.” “알겠습니다.” 나는 급히 뛰어나갔다. 권사님은 손에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계셨다. 묵은 지만 조금 가지고 오시면 될 것을 깍두기, 고들빼기, 배추와 휴지를 사오셨다.
저 멀리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유심히 바라보니 차 안에 길 집사님이 한참 무엇인가를 찾고 계셨다. 두 내외분이 같이 오신 것이다. 나는 차를 향해 다가갔다. “집사님 안녕하세요.” “응 잘했어. 이제 세 안 살아도 되겠네. 어서 가, 어서 가.” 손짓하셨다. 바람은 불고 날씨는 추웠다. 마치 자식이 추울까 싶어 얼른 들어가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길 집사님은 나에게 유별났다. 연탄 가는 것을 거들면 옷에 묻는다며 얼른 들어가라고 나무라곤 했었다. 뭐라고 할까.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나왔다.
한편 권 권사님은 나에게 반찬을 잘 챙겨 주셨다. 하지만 그 정성과는 달리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특히 얼마 전 길 집사님이 심근경색으로 수술하신 후부터 식단은 주로 건강식이 되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권사님이 갖다 주는 반찬을 입맛대로 골라 먹었다. 남거나 입에 맞지 않는 것은 몰래 하수구에 버리곤 했다. 결국, 하수구는 막혔고 물은 잘 빠지지 않았다. 길 집사님은 하수구를 파헤쳤다. 결과는 뻔했다. 내가 버린 음식물이 체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지없이 불똥은 권사님한테 튀었다. 길 집사님은 권사님을 나무랐다. 먹지 않고 버리는 것을 왜 해주느냐고 했다. 하지만 권사님의 정성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한 번은 찐 고구마를 가져오셨다. 워낙 오랜만에 맛보는 고구마라서 그런지 손이 저절로 갔다. 권사님 앞에서 맛있게 먹었다. 그때 권사님은 말씀하셨다. “이렇게 잘 먹는데 우리 영감은 모르면서 먹지도 않는 것을 해주느라 당신만 고생한다고 그래.”
권사님은 비로소 말씀하셨다. “배다른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집이 또래일 거야. 집에도 놀러 오곤 했는데 내가 결혼을 하고 가족들과 어울리기 어려웠던지 그 길로 발을 끊었어.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몰라.” 눈시울을 적셨다. 말하자면 나는 권사님한테 동생과 같은 존재였다.
오늘도 교회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다가오더니 이내 어깨를 툭 쳤다. 놀라서 쳐다보니 권사님이었다. “오전에 여기 있었어? 밥은 먹었어.” 나는 씩 웃었다. “먹었어요.” “오전에 보이지 않아서 안 나온 줄 알았네.” 지금 권사님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고 있다. 혹여 예전처럼 몸이 아파 못 나온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술을 좋아했다. 걸핏하면 술에 취해서 세상, 모르고 잘 때가 많았다. 돌봐 주는 사람도 없었다. 간혹 집에 들러보면 늘 혼자였고 방에는 소주병이 굴러다녔고 추운 겨울이면 온기 하나 없는 냉방에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