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뭘까.
2015년 11월 가을바람이 눈이 시리게 불어왔다. 가을은 한날 다 춥지 못했을까. 그 이튿날 체증으로 인한 추위를 맹렬하게 뱉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날도 선비도서관에서 집필을 마치고 병원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 길에서 만나는 가을은 땅을 깎아질러 놓은 듯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바람은 살갗을 까칠하게 깎아지르며 다 저물어 석양으로 쓰러지는 해를 서산으로 업는 듯 다가왔다. 그것을 대하는 심정은 여느 때와는 달리 말할 수도 없는 불길한 징조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요즘 이상하게 상수 형님이 자꾸 꿈에 보이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상수 형님은 누군가가 우주에 쏘아올린 인공위성처럼 맴돌았다. 그의 부탁을 받고 무엇을 전하기 위해 밤새워 달려온 전령 같았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안 씨 형님한테 전화했다. “형님 날씨는 추워지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그저 죽지 못해서 살아. 아참! 너 고 씨 알지?” 순간 나는 부딪힐 돌부리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아니 오늘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우연히 쪽방에서 내건 현수막을 봤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까 고 씨야. 그 사람 항상 주머니에 사탕을 가지고 다니면서 먹었지.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해서 좀 그랬는데 당뇨 합병증 인 심근경색으로 사망 했다네. 그래서 지금 쪽방 사람들 한국병원 장례식장으로 몰려갔어.” 나는 허물을 벗듯 온몸의 힘이 쭉 빠진 채 그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싶었다.
“사람 사는 것 참,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갈 줄 누가 알았어.” 있을 때 잘 하라고 했든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참을 수 없는 아픔이 한꺼번에 숨 가쁘게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그 사람 그 정도인 줄 몰랐어. 한 번은 담뱃값이 없다고 이천 원만 빌려 달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빌려줬는데. 어제 수급비가 나왔잖아. 오늘 담뱃값 이천 원을 빌려 달라는 거야. 그래 이천 원도 없어서 그러나 싶은 게 사람이 다시 보이더라고.” 기가 막히고 황당하고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고 씨 형님이 모아 놓은 돈 200만원을 동거녀가 가지고 도망갔다고 했다.
사는 게 뭘까? 이웃에 대하여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와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신5:17–21) 관계를 통한 요구를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