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천보존회를 가다
내성천본회 평소 집을 오고가면서 봤지만 무엇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의 모임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주문이 있었다. 왜 영주 댐에 물이 없는지를 아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알게 되어 취재에 나섰다.
2012년 서울에서 건설업체를 다녔던 황 선종 사무국장은 글을 쓰기 위해 고향 경북 영주로 내려왔다. 하지만 정부는 영주 댐을 짓겠다며 내성천을 파헤치고 있었다.
뜻을 모아 그들은 내성천보존회를 창립했고 첫째, 위험한 사질 지대에 영주 댐이 건설되었다는 점에서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둘째, 영주 댐 건설공사로 인하여 파괴되고 원형이 상실된 내성천을 복원하고자 나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영주 댐 철거와 그 이후 철거된 내성천의 원형을 복원하고 더 나아가서 국립공원화 청원 및 유네스코 등재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내성천보존회는 병행하여 도리(道理)가 밝아지는 사회를 꿈꾸며, 이에 부합하는 정치·사회·문화 운동을 지역에서 펼치고 있다.
그동안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기나긴 109km의 하얀 모래강변을 지키고자 영주 댐을 중단시키고 내성천을 국립공원으로 만들겠다며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다 지어 놓은 영주 댐을 중단시키고 철거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무모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영주의 보물 아름다운 내성천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엄마 품처럼 받아주는 모래강변을 잃을 수 없기에, 내가 보고 느끼고 뛰어 놀고 마음껏 즐기고 달랬던 그 거랑을 우리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물려주어야 하는 이 시대의 책임감이 있기에, 무모한 일이라도 계속해야만 했다.
이 나라는 댐 밀집도 세계 1위, 댐 수에서도 세계 7위에 해당하는데 이에 어느 학자는 ‘댐 마피아’ 라는 말을 했다.
영주지역만 살펴보더라도 남동쪽으로 30여 분만 차를 달리면 안동호가 나오고 북서쪽으로 30여분만 가도 중주호가 있다. 그런데 또 영주 댐을 지어 영주 호를 만들려고 한다.
개발도 필요하겠지만 개발에도 도리가 있다. 그는 오히려 자연 그대로가 사람에게 더 이롭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도 있다며 불필요한 개발은 안 된다고 했다.
영주 댐이 필요에 의해서 지어졌다면 백 번 인정할 용의가 있지만 영주 댐이 지어져 담수가 된다면 높아진 습도와 잦은 안개로 인하여 지역민들에게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또한 일조량이 부족해 농산물의 품질도 형편없이 떨어질 것이고 경관으로 따져보아도 인근에 안동호가 있어 계절별 수위 차에 의해 붉게 드러난 흉물스런 모습을 우리는 보았기에 그리고 영주 댐에 담긴 물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영주 댐은 아무 쓸모가 없는 크게 잘못 된 것이었다.
영주 댐은 2009년 번개 불에 콩 볶아 먹듯이 형식적인 조사에 그친 채 착공 되었고 아시다시피 영주지역은 마사토 지역이므로 암반이 연약하여 절대 댐을 지을 만한 요건이 못 되었다.
실제로 댐의 3분의 1은 연암에 콘크리트가 타설되었고 언제 어떤 재앙이 닥칠지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미 물이 센다는 제보도 있었다.
먼저 담수를 막고 재조사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내성천의 가치와 미치는 영향 등을 살피고 영주 댐의 필요성과 안전성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정부의 판단과 결정 그리고 평가만 남았을 뿐이다. 내성천보존회는 향후 전국 강 산류 연대를 결성하여 정부와 소통하는 창구를 만들고 힘 있는 조직으로 나갈 것이다.
황 선종 사무국장은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앞으로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걱정하고 있었다. 보수층이 두터운 이 지역은 권력에 순응하는 지역정서가 있어 회원들조차 드러내 놓고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내성천보존회는 내성천에 대한 애정을 갖고 영주 댐과 내성천 일대를 탐방하고자 하는 단체를 위하여 ‘내성천 가이드’를 년 중 시행하고 있고 자연과 강과 내성천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을 위하여 탐방할 경우 사무국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는 지금 7년 째 싸우고 있다. 먼 훗날 후손들에게 영주 댐 건설을 방관하지 않고 온힘을 다해 싸웠노라. 말할 수 있는 떳떳한 역사의 현장을 남기고 싶은 희망의 전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