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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이름 모를 이에게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4449 등록일: 2019-09-06

 

이름 모를 이에게

 

20151120

나는 그날도 여전히 경상북도 영주선비도서관으로 외출을 서둘렀다. 언제부터인가 점심 한 끼 거르는 것은 보통이었다. 그럴 때마다 꼬르륵, 꼬르륵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에 흠뻑 취해 글을 전개했다.

나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도서관을 나섰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리한 것일까? 갑자기 머리가 울리듯 아프고 정신은 맑지 못하고 멍했다.

혹시 전자기장이 진공이나 물질 속을 전파해가는 현상이 아닐까? 급기야 내 전신의 아픔을 없애기 위해 국소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줄어 없어지는 마취에 취한 기분이었다.

점점 사물은 또렷하고 분명하지 않게 흐려지고 곧이어 귓전에서는 윙윙거리는 벌레 울음소리가 진행되고 머릿속은 어둡고 캄캄하고 수많은 불티가 먼지처럼 날아다녔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암울하기에 이르렀다.

점점 머리가 울리고 아플수록 먼 데서 손님이 오시는 듯 그 아련함이 그지없이 느껴진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했던지 가물치 한 마리가 유유히 물속을 유영하여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듯 다가온다.

이제는 일정한 논리나 기준에 따라 사물의 가치와 관계를 결정하는 능력은 일탈하고 세상 물정에 대하여 옳고 그른 것들조차 적당하게 판단하는 능력은 꿈속에서 놀고 있는 꿈같은 기분으로 각인됐다.

하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잘 견디어 내며 볼일을 보고 있었다. ATM기는 날숨 한 번으로 툭하고 통장을 쳐올렸다. 통장에는 삼십구만 원이 찍혀 있었다. 또 빠듯하게 어떻게 살까? 돈을 한꺼번에 찾아서 쓸까? 아니면 통장에 쓸 만큼만 찾아서 쓸까? 어떤 것이 절약에 도움이 될까? 그렇게 또렷했던 배꼽시계가 제 풀에 지쳤는지 소리가 늘어져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나는 볼일이 끝나고서야 때늦은 점심인지 아니면 이른 저녁인지 모호한 식사를 하고 모텔로 향했다. 우연히 번개시장 한쪽에서 말랑말랑하게 누워 있는 가래떡을 만났다. 그동안 아무리 먹고 싶어도 병원생활에서 먹을 수 없었던 사모하다 못해 아주 흠모해버린 그 그림의 떡을 취했다. 편의점 앞을 지나다가 그야말로 샛노랗게 탱글탱글 잘 여물어 샛노란 물이 하나 가득 번져버린 귤을 샀다.

나는 모텔에 들어갔다. 벌러덩 누워 버렸다. 천장을 바라다보니 문득 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가 떠오른다.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다보는 그 기분은 어떤 것일까? 나는 중얼거렸다. “너는 바다에 누웠느냐 나는 침대에 누웠노라.”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가래떡을 먹었다. 한 입에 넣고 씹었다. 씹을수록 차지고 질겨서 그 질감은 응집력을 낳았다. 이때 난데없이 눈치 없는 손 전화가 울었다. 꼬락서니를 보니 모르는 전화번호 하나 입에 머금고 있어 지그시 전원을 눌렀다.

그런데 돈 십만 원이 비었다. 통장을 확인해보니 십만 원은 그대로 남아 있고 이십구만 원은 찾은 것으로 되어 있어 돈을 다 찾은 것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이리저리 생각해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전혀 그 실마리를 잡히지 않고 생각은 한없이 엉키어 풀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월요일 아침 일찍 농협을 다시 찾았고 창구 금 진숙 과장에서 통장정리를 부탁했다. 그런데 박 원 희 계장이 뜻밖의 말을 했다. “고객님 금요일 날 십만 원 놓고 가셨어요. 어느 분이 ATM기에서 돈을 가지고 오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날 여러 번 전화 드렸는데 안 받으시고 전원을 끄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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