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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이 길 끝에서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4309 등록일: 2019-04-29


새벽 대지 위에 가물가물 그 키를 한 자나 더하듯 아른아른 자라는 안개를 자욱이 밟으며 교회로 향했다. 

워커힐 모텔 귀퉁이를 돌아서자 상추밭에 돈이 있다. 상추밭에 돈이라? 글쎄 자세한 뜻은 모르겠으나 삼겹살에 상추가 빠질 수 없으니  당연히 상추는 돈이 되는 것이리라. 머리가 깨질 듯이 은빛으로 쟁쟁한 가로등은 누가 좌로나 우로나 정렬해 세워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길을 가노라니 문득 대통령의 의장대 사열하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중소기업은행 앞을 지나는데 누군가 내 등 뒤에서 부른다.“집사님! 집사님!”이 어두운 새벽을 헤치고 또 누군가 교회에 가는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나는 집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집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집사를 부르는 소리는 또박또박 어둠을 쪼개어 담그는 깍두기처럼 자꾸만 뚜벅뚜벅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에게 내 뒷덜미를 잡힐 것만 같았다. 

이 기분은 뭘까? 정신없이 뒤를 돌아보니 가물가물 어둠을 거두어 내며 하얀 자동차가 희끄무레해 다가왔다. “집사님 정인수 장로입니다. 타세요.”한다. 순간 나는 당황하고 놀랐다. 

누굴까? 누구이기에 나를 집사라 부르고 타라는 것일까? 가까이에서 뵈니 매주일 어김없이 건너편 맨 앞자리에서 예배드리는 분이셨다. 장로님은 함빡 터진 박꽃처럼 웃고 계셨다.
“회사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회사, 도대체 무슨 회사이기에 이 새벽까지 일한단 말이더냐? 이상하기도 하고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로님은 불쑥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계셨다.“아이들은 몇이세요?”순간 지금쯤이면 제 엄마 품에 엉겨 붙어 세상모르고 쌕쌕거리며 자고 있을 두 녀석을 생각하며 입가에 썰물처럼 미소가 번졌다.
“아직은 결혼하지 못했습니다.”장로님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그런 장로님을 의식한 듯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능력이 없습니다.”그러자 장로님은 단호하고 냉철하게 말씀하셨다.

“남자는 결혼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활은 안정이 되고 마음 편하게 밖에 일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나는 나중에야 장로님이 대영레미콘 회장님이시 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이 있은 지 꼭 엊그제 같은데 장로님은 작년 9월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맨 앞자리에 앉아 안경 너머로 지그시 성경을 보시는 건강하셨던 그 모습은 지금도 내 눈에 선연하게 살아 있다. 

우연히 화장실에서 마주칠 때면 다른 것보다 결혼이 먼저라며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암송하셨다. 세상을 떠나시기 며칠 전 교회에서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아무 말씀 없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셨다. 지금 생각하면 장로님은 그 순간에도 나를 생각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장로님은 그 마음을 고스란히 안고 어떻게 세상을 떠나셨을까? 

오늘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옛날 떡집을 만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얀 구름이 피어나는 시기였다. 

이제 아침 여섯 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 배달을 예고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작고 정갈하게 포장된 떡이 여봐란듯이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지상회 앞을 지나는데 푸릇푸릇 날개가 돋혀 날아갈 듯이 생기발랄한 배추가 들어왔다. 

강도 푸르면 깊은 법인데 저토록 짙푸른 배추는 그 얼마나 속이 깊을까? 

오동 통통하고 하얀 피부를 가진 무가 송림 상회에 들이닥쳤다. 

짧고 굵은 단단한 다리에 뽀얀 피부에는 백옥이 박혀 있다. 

몸속의 세포 줄기를 따라 활기찬 생기를 내뿜으며 머리가 푸르고 육하고 번성하여 급기야 365시장(골목시장)이 충만하다. 

경신 콩나물이 단무지 상회에 도착했다. 

소복하게 고만고만한 것들이 까까머리를 하고 도토리 키 재기를 하며 한 뼘의 자람을 놓고 옥신각신 다투고 있다. 삶은 무엇일까? 

먼 훗날 내가 죽어 육체 밖의 공중에서 이것을 멀리 바라보며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고 본향에 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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